박근혜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에서 노동개혁이나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를 미적거리고 있는 국회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국민 심판론’을 다시 거론했다. 지난 6월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당ㆍ청 갈등 과정에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정치 심판론’을 들고나온 지 5개월 만이다.
이번에는 ‘심판 대상’이 특정인에 머물지도 않은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이 나서달라”며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밝혔다. “국회가 이것(민생법안)을 방치해서 자동폐기 된다면 국민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對) 국회 경고도 덧붙였다. 여야와 출신지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국회의원에 대해 ‘국민을 진실로 위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내년 총선에서 심판해 달라고 호소한 셈이다.
대통령이라고 국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거나 효율적 법안 심의를 주문하지 말란 법은 없다. 또한 발언의 내용도 원론적으로는 지당하다. 국민의 대표로서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당리당략과 정치셈법에 사로잡혀 개인적 소신과 민의를 저버려서도 안 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작심하고 하는 말이 이런 교과서적 원칙론에 머문 것일 수는 없다. 국회에서의 의사 결정에 의원 개개인의 소신보다 당론이 앞서게 마련인 정치현실과 그 배경까지 속속들이 알 만한 경험을 가진 박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렇다. 또한 특정 후보자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의 개별적 사유는 실로 다양하고, 어떤 투표 결과든 논리적 근거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은 채 곧바로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대통령이 아무리 국민에 호소해도 귀를 기울일 국민은 한정적이고, 그 때문에 위협을 느낄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의 이번 심판론은 전직 청와대 참모진과 현직 장관 등 10여명이 은근히 ‘박심(朴心)’을 내비치며 내년 총선을 겨냥해 대구 지역으로 몰리고 있는 현상과 떼어 보기 어렵다. 안 그래도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사퇴와 대구 동을 출마설을 계기로 친박 인사들의 대구 쏠림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ㆍ경북(TK) 지역의 확고한 박 대통령 지지에 비추어 ‘국민 심판론’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곳도 여기다. 친박 인사들이 출사표를 던졌거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지역구의 현역의원이 한결같이 친박이 아니어서 일찌감치 ‘물갈이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구로 몰리는 친박 인사들과 박 대통령의 물밑 교감을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는 동시에 그것이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인지도 의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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