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가능성 총기 사고로 미 대륙 초긴장
한인이 밀집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동부 인근 소도시에서 테러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최근 3년 만에 가장 많은 14명의 사망자가 발생, 미국 전역이 초긴장 상태다. 사건 발생 4시간 만에 사살된 용의자들이 20대의 무슬림 미국인 부부로 추정되는 데다가,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총격범들이 마치 임무를 띤 것처럼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테러와 연관성을 시사했다. 사고현장 목격자들은 용의자로 지목된 사이드 파룩(28)과 그의 아내로 추정되는 타프신 말릭(27)이 자동소총과 권총으로 중무장하는 등 사전에 준비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증언했다. 또 이날 아침 6개월 된 딸을 할머니 집에 맡겼고, 범행을 마치고 도주할 때도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을 침착하게 몰고 나가는 등 대담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부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파키스탄 이민자 후손이며 올 초에는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오기도 했다. 사전 계획의 징후도 점점 뚜렷해지면서 테러단체와의 연관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고 발생 이튿날인 3일 기자회견을 통해 “용의자들의 범행동기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면서도 “테러와 연계된 공격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연방수사국(FBI) 역시 테러와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고, 총격범들이 거주했던 아파트를 급습해 정밀 수색을 벌였다. 데이비드 보디치 FBI LA지국 부지국장은 “현재로서는 직장 내 폭력사건일 가능성과 테러 사건일 가능성이 반반”이라며 “테러 연관성이 있는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2일 AP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LA에서 동쪽으로 95㎞ 떨어진 인구 21만여명의 샌버나디노의 발달장애인 재활시설 ‘인랜드 리저널 센터’에서 이날 오전 11시11분께 군복차림으로 복면을 한 괴한이 침입, 무차별 총격을 벌여 14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희생자 숫자로 보면 2012년 12월 코네티컷 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사망 26명) 이후 최대이며, 올 들어서는 최악의 사건이다. 현장에는 당시 샌버나디노 카운티 공중보건과 직원들이 일부 공간을 임대해 송년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로 미 대륙에 ‘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벌어진 것이어서, 테러 연관성이 확인될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된다. 불과 며칠 전 “미국은 안전하다”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공포와 불안감이 연말 미국 사회를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또 2016년 대선에서 테러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경찰은 사건 직후 시내를 수색, 범행 발생 4시간여 만에 범인들이 사용한 차량을 추적해 검거 작전을 벌여 현장에서 부부를 사살했다. 제러드 버건 샌버나디노 경찰국장은 기자회견에서 “목격자들이 지목한 차량을 발견, 체포하려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남성과 여성 각 1명인 용의자들이 사살됐다”고 말했다. 검거 과정에서 파룩과 그의 아내는 사제 폭발물까지 던지며 완강하게 저항했으며, 경관 1명도 부상을 입었으나 중상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까지는 테러와 무관한 사소한 다툼 끝에 벌어진 우발적 사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LA타임스는 샌버나디노 보건국에서 근무하는 파룩이 총기 사건이 벌어지기 전 송년행사에서 동료들과 다툼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메리디스 데이비스 주류·담배·총기단속국(ATF) 대변인은 “총격범들은 각각 자동소총과 권총으로 중무장한 상태였다”면서 “이들은 탄환에 총알을 가득 장착하고 범행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소총은 돌격소총의 일종인 AR-15 자동소총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 담당 참모로부터 총격 사건을 보고 받은 뒤, “미국은 세계에서 총기사고가 가장 빈번한 국가가 됐다”며 “총기규제를 위한 논의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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