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62년 만에 폐지
2월26일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위헌결정이 내려졌다. 헌재는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간통죄는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간통죄는 1990년 이후 네 차례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결국 헌재의 벽을 넘게 됐다. 이로써 1953년 제정 형법에 마련된 지 62년 만에 ‘범죄로서의 간통’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형사처벌이 불가능해진 간통 문제는 현재 당사자 간 민사 또는 위자료와 배상액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불륜 급증, 기혼여성 피해 등 우려의 목소리도 컸으나 큰 혼란은 빚어지지 않고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반일ㆍ반미 성향 문화단체 대표 김기종(55)씨에게 흉기로 공격을 당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조찬 강연회에 참석한 리퍼트 대사는 김씨가 휘두른 과도에 얼굴 오른쪽 광대뼈부터 턱밑까지 길이 11㎝, 깊이 3㎝의 자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한미동맹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도 있었지만 리퍼트 대사는 피습 5일만에 퇴원하면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같이 갑시다”라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김씨는 9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자살
해외자원개발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4월9일 자신이 돈을 주었다는 정치인 8명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메모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모에는 ‘김기춘(10만달러) 허태열(7억) 홍준표(1억) 부산시장(2억) 홍문종(2억) 유정복(3억) 이병기 이완구’라고 쓰여 있었다. 이완구 당시 총리는 결국 취임 63일 만에 물러났고,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3개월간 진행됐다. 이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다른 6명은 모두 면죄부를 받아 ‘용두사미 수사’비판이 나왔다.
메르스 파동
중동여행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감염된 첫 환자(68)가 5월20일 발생했다. 그는 확진 이전 9일 간 4개 병원을 옮겨 다녔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환자, 보호자, 의료진에 무차별 전염됐다. 정부는 우왕좌왕했고, 국내 최고수준을 자랑하던 삼성서울병원은 오히려 감염의 진원지가 됐다. 방역당국의 무능, 방역체계의 무기력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메르스 공포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경제마저 초토화됐다. 정부는 첫 환자 발생 후 218일 만인 이달 23일 공식적으로 메르스 상황 종료를 선언했다. 총 186명이 감염됐고 이 중 38명이 사망했다.
롯데가 경영권 분쟁
7월부터 국내 5위 재벌인 롯데그룹 경영권을 놓고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낯뜨거운 싸움이 벌어졌다. 아버지와 장남이 한 편이 됐고, 동생이 다른 한편이 돼 해임, 상호비방, 소송 등막장 싸움을 이어갔다. 국민들은 재벌가 오너들의 ‘피보다 진한 돈 싸움’에 환멸을 느꼈고, 이는 반재벌정서로 번졌다. 일단은 그룹을 장악한 신동빈 회장이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전 부회장 측이 법적 대응으로 맞서고 있어 분쟁은 장가화될 전망이다.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7월 8일 국회법 파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여야 협상에서 공무원연금개혁 법안과 국회법 개정안을 맞바꾼 것이 발단이 됐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는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사실상 유 의원을 찍어냈다는 게 정설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여당 원내대표까지 축출되는 사태를 두고 정당민주주의와 3권 분립 원칙을 뒤흔든 나쁜 선례라는 비판이 나왔다. 유 의원은 사퇴 회견에서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 1항을 지키고 싶었다”고 반발했다.
北 지뢰도발과 8ㆍ25 남북합의
우리 군 장병 2명이 8월4일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 매설한 목함지뢰를 밟아 부상을 당했다. 군 당국은 대북심리전의 일종인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며 응징에 나섰고, 북한은 준 전시 상태를 선포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하지만 남북은 3박 4일간 판문점에서 2+2 남북 고위급 접촉을 갖고 지뢰도발에 대한 북한의 유감표명과 확성기 방송 중단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8ㆍ25 합의에 따라 10월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재개됐지만 12월 11일 개성에서 열린 차관급 당국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 관계는 온탕냉탕을 반복했다.
미중 균형외교의 딜렘마
3월 불거진 주한미군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논란부터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까지 줄곧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교가 이어졌다. 매번 균형외교냐, 편향외교냐 논란이 일었다. 이 와중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미중 러브콜은 축복”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했고, 아베 일본 총리의 5월 미국 방문에 이은 워싱턴 내 ‘한국의 중국 경사론’도 뜨거운 감자였다. 박 대통령의 10월 방미로 논란은 가라앉았지만, 미국과 중국 모두를 신경 쓰면서도 누구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는 외교딜렘마는 새해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부는 10월12일 교육부 행정예고를 통해 중ㆍ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했다. 현행 검정교과서가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이유였다. 여당대표는 “역사학자 90%는 좌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국민 대다수는 반대했고, 역사학자들은 학문의 다양성 포기라며 교과서 집필을 거부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은 더 심화했고, 11월 이후 대규모 민중집회, 폭력시위와 과잉진압논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도피로 이어졌다. 새 역사 교과서는 ‘깜깜이 집필’논란 속에 2017년이 돼야 실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안철수 탈당과 야권지형 대격변
안철수 의원이 12월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에 나섰다. 비주류 의원들의 동반 탈당이 이어지면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안 의원은 새정치연합을 ‘낡은 진보’로 규정한 채 광범위한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한다는 계획. 안철수 신당의 파괴력은 김한길ㆍ박지원 의원 등 새정치연합 내 계파수장의 동참여부에 따라 크기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년 총선에서 야권이 분열된 상태로 새누리당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은 불가피하다. 역대 정치사에서 중도 기반의 제3세력 실험은 희비가 많이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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