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국화재가 작년 10월부터 시범사업 중인 ‘운전습관연계보험(UBI)’은 자동차에 부착한 차량정보 수집장치를 통해 1년간 가입자의 운전습관을 분석하고 보험료를 최대 50%까지 낮춰주는 상품이다. 규정 속도를 준수하고 급제동, 급발진 등을 줄이면 보험료를 낮춰 주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주행거리가 적으면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기존 획일화된 방식에서 한 발 더 나간 셈이다.
지금까지 금융권 상품과 서비스는 ‘붕어빵’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금융회사들이 따라오지 못할 획기적인 상품을 내놓기엔 기술도 부족했고, 규제도 많았다. 무엇보다 굳이 붕어빵에서 탈피하지 않아도 고객을 유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민상기 금융개혁회의 의장이 최근 “이젠 금융 서비스와 상품이 ‘다르면 살고, 같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금융산업이 보신주의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일침을 놓은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IT가 금융회사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지금, 민 의장의 경고처럼 더 이상 차별성이 없는 상품과 서비스로는 살아남는 것이 어렵게 될 전망이다. 너도나도 IT 기술을 접목해 혁신적이고 기발한 상품들을 앞다퉈 출시하게 되면, 붕어빵 상품은 자연스레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금융상품이다. 신한카드가 그간 축적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카드 ‘코드9’을 선보인 것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앞으로는 방대한 금융 빅데이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해 상품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인터넷은행의 경우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업권의 빅데이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현금으로만 획일화돼 있던 예금 이자 관행도 확 바뀔 전망이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톡, 멜론, 지마켓, 예스24 등 참여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셜 포인트’를 제공할 방침이고, K뱅크 역시 음성통화나 데이터 요금, IPTV 결제 등에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이자로 지급할 계획이다. 이런 ‘디지털 이자’가 젊은층 고객을 흡수하는 경우 이자 지급 방식의 다양화는 더욱 속도를 낼 공산이 크다.
이미 치열한 경쟁이 붙은 생체인식 시스템이나, 사람이 아닌 로봇(인공지능)이 투자자의 자산관리를 도와주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등도 업권별로, 또 업체별로 차별화된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당국의 상품 규제까지 풀리면 그 파급은 훨씬 클 수 있다. 최근 가격 규제가 없어진 보험업권에서 유병자나 고령자, 장애인 등 특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상품개발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금융권에서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상품개발 및 출시 경쟁이 한층 치열해져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주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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