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보당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 징후를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댄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휴민트(Humintㆍ사람을 통해 얻은 정보)를 놓치고 북한의 기만전술에 홀리면서도 근거 없는 자신감만 앞세워 북한을 얕봤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풍계리 주변 주민통제, 中과의 정보공유 삐걱
정부는 6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줄곧 실험장소인 풍계리에서 관련 징후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로 위성사진 분석결과인 이민트(Imintㆍ영상정보)나 정찰기가 입수한 시긴트(Sigintㆍ신호정보)를 토대로 한 내용이다.
이와 달리 휴민트를 보면 북한 내에서 이상 징후가 사전 파악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올해 들어 핵실험장이 위치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주변은 물론이고 자강도와 양강도에 사는 일부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했다는 것이다. 풍계리 주변의 휴대폰 전파까지 차단된 정황도 일부 알려졌다. 이처럼 북한이 핵실험장 주변의 주민들을 통제한 것은 2013년 2월 실시된 3차 핵실험 직전에도 포착된 이상 징후다.
정부 관계자는 7일 “중국이 그 같은 이상 징후를 휴민트를 통해 확보한 것으로 안다”며 “우리 측과 원활하게 정보를 공유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방부는 중국 국방부와의 핫라인을 개통하며 대북공조를 강화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불과 며칠 만에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대북정보를 분석하는 한 정부 인사는 “오판을 했다”고 인정한 뒤 “1950년에도 6월에 징후가 많았는데, 북한이 (전쟁)준비 뒤 평화공세를 폈고, 거기에 남한 내부가 넘어갔다”면서 “이번에도 당시와 비슷하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했다.
새로 파는 갱도에만 집착하다 뒤통수
정보당국은 이처럼 대북정보를 소홀히 다룬 것뿐만 아니라 북한의 기만전술에도 완벽하게 당했다. 북한은 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해 10월부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새로운 갱도를 파기 시작했다(▶ 본보 10월 31일자 1면). 앞서 2009년과 2013년 2ㆍ3차 핵실험을 한 서쪽 갱도와 아직 사용하지 않은 남쪽 갱도 사이에 위치한 갱도였다.
돌이켜보면 이 갱도는 한미 정보당국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가짜 갱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 갱도에서 차량과 사람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핵실험 우려가 제기됐지만 국방부는 “새로 갱도를 만들려면 1년 이상이 걸린다”며 느슨하게 대응했고 그 사이 북한은 기존 서쪽 갱도에서 북동쪽으로 2㎞ 떨어진 장소로 옮겨 4차 핵실험에 나섰다. 정보당국이 “졌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매일 같이 풍계리의 위성사진을 들여다보면서도 징후를 몰랐다는 건 관심이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는 의미”라며 “북한이 이 같은 우리의 패턴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軍, 여론전 치중하다 제 꾀에 넘어가
국방부가 핵실험을 대국민 여론전에 이용하다 된서리를 맞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는 2014년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풍계리 남쪽 갱도에서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당장 4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며 내ㆍ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자처하면서 한달 여간 위기감을 조성했다. 반면 북한은 단거리미사일 발사 외에 별다른 도발에 나서지 않았고, 국방부는 존재감을 과시하며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후 국방부는 “북한의 핵실험 징후를 최소 한달 전에 파악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이번에는 가림막 설치나 갱도 되메우기 등 통상적인 준비절차를 건너뛰면서 4차 핵실험을 감행해 허를 찔렀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너무나 은밀하게 준비하면 파악할 수 없다”며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 군사전문가는 “대북 감시체제 구축에 쓴 돈이 얼마냐”면서 “위기관리 실패의 원인을 다시 되짚어야 한다”고 책임론을 거론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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