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개입 파기환송심
심리전단 직원 답변 거부도 여전
재판부는 다음 기일 人事 뒤로 연기
판사 바뀔 가능성 커 하세월 우려
“증인, (국가정보원) 내부에서 (증언을 거부하라는) 지시나 지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특별수사팀 부팀장을 맡았던 박형철 부장검사가 사표를 낸 뒤, 원세훈 전 국정원장(사진)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5차 공판)이 11일 오전 10시 처음으로 열렸다. 2년 6개월 가량 재판을 이끌어온 박 부장검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수사팀 멤버인 김성훈 이복현 단성한 검사가 수장을 잃은 채 검사석을 지켰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시철)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도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직원들의 지속적인 증언 거부, 이를 방조하는 재판부, 또 재판부의 일방적인 재판 일정 늦추기로 검찰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모씨가 검찰 신문에 30분 넘게 한결같이 “증언을 거부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하자 이복현 검사는 국정원 내부의 지시가 있었는지 캐물었다. 앞선 3, 4회 공판에서도 국정원 직원들은 트위터 계정 사용,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받았는지 등 박형철 부장검사가 던진 수십개의 질문에 모조리 답을 거부했었다.
이에 이 검사는 마이크를 당기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았다. 그리고 재판장이 사실상 증언거부를 방조하고 있다고 재판부의 공판 진행에 강하게 항의했다. 그는 “증언 거부권 행사 대상이 아닌 부분도 있다”며 “검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도록 재판부에 촉구한다”고 요청했다. 이 검사는 이어 “증인 출석 전에는 재판장이 ‘출석을 강제할 의사가 없다’고 했고, 나와도 (진술 거부를) 광범위하게 용인해 주는 말씀을 하니 모든 증인이 다 이러고 있는 거 아니냐”며 말했다.
재판장이 “증인의 답변을 강제할 순 없다”고 반박하자 이 검사는 “이 같은 답변 촉구 거부를 공판조서에 꼭 남겨 달라”고 되받았다. 재판장은 원 전 원장에 편향된 재판 진행 논란을 의식한 듯 “증언 거부는 파기환송 전 당심(항소심)에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은 “검사가 답변을 거부하던 국정원 직원들만 증언으로 (법정에) 다시 세워서 그런 거 아니냐”며 수사팀을 자극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날 다음 재판을 3월 14일로 무려 2달 뒤로 미뤄 논란을 빚었다. 법원 인사가 2월 말로 예정돼 있어 재판부 판사가 바뀌게 되면, 새로 온 판사가 다시 사건기록을 검토하는 등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 검사는 “진짜 이해가 안 간다. 5번의 공판준비기일 때 증인 신문 관련해 가정법 질문 등으로 그렇게 뜻대로 하더니 이제 와서 3월에 한다는 건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며 “일주일에 재판을 2, 3번 진행하자”고 했다. 재판부 변경 전에 심리를 끝내야 한다고 얘기에도 재판장은 그대로 하기로 했다.
선거개입 트윗글 규모를 다시 산정해서 심리하도록 파기한 대법원의 취지를 배척하고, 사실상 사건 전체를 다시 심리하려는 파기환송심의 진행과정에도 검사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이 검사는 “대법원이 판단 기준을 제시했음에도 법원이 이를 외면하고 국정원 직원의 일탈인지 공모였는지를 먼저 심리하려는 것은 무죄를 염두에 두고 사실관계를 결론에 끼워 맞추기 위한 궁리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재판부를 겨냥했다. 이 검사는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일단 불법 트윗글 규모 등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 범위를 확정한 뒤, 그것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는지, 그렇다면 그게 원 전 원장의 지시로 인한 것인지 순으로 파기환송심에서 심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재판장이 지난 4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손자병법’을 인용해 국정원의 조직적 댓글달기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탄력적인 용병술’에 빗대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박형철 부장검사는 자리를 박차고 법정을 나가기까지 했었다.
박 부장검사는 지난 6일 검찰 인사에서 고검검사로 3년째 좌천인사가 이어지자 7일 사표를 냈다. 박 부장검사는 2013년 윤석열 전 국정원 대선개입 특별수사팀장과 함께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 맞서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ㆍ압수수색하고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추가해 법원에 공소장 변경신청을 한 뒤 징계를 당하고 좌천인사를 당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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