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00억원대 기업비리 혐의로 기소된 조석래(81) 효성그룹 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회삿돈 16억여원을 횡령한 장남 조현준(48) 사장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창영)는 15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조세) 등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과 함께 벌금 1,365억원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담낭암 4기ㆍ전립선암 판정 등을 받은 조 회장의 건강 상태와 고령인 점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조 사장에게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선고와 함께 사회봉사 120시간 명령이 떨어졌다.
재판부는 조 회장의 총 조세 포탈액을 1,358억원으로 인정했다. 검찰의 공소사실 1,491억원 대부분을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친 조세포탈은 수차례 회계감사에서도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조직적이고 치밀했다”며 “이는 조세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일반 국민들의 납세 의식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 측은 결심공판에서 “조세 포탈에 고의가 없었고,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았으며, 분식회계는 외환위기 당시 회사를 살리려는 불가피한 경영상 판단이었다”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경영상태가 호전된 2012년에 이르기까지 회계분식과 조세포탈을 반복해 경영권 및 지배구조를 강화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회장은 2003~2012년 5,010억원 상당의 분식회계, 이를 통한 법인세 1,237억 9,000만원 포탈, 같은 기간 효성그룹 임직원 227명 명의로 주식을 보유해 양도소득ㆍ종합소득세 125억여원을 내지 않은 혐의 등으로 2014년 1월 불구속 기소됐다. 수백억원대 횡령ㆍ배임 혐의 등도 더해져 범죄혐의 금액이 총 7,900억원대에 달했다.
하지만 일부 조세포탈과 횡령 배임 등 혐의는 모두 무죄가 인정됐다. 우선 조 회장이 홍콩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CTI, LF) 명의로 효성 계열사 카프로 주식을 보유해 110억원을 조세 포탈한 혐의가 무죄가 났다. 해당 주식매입에 그룹 차원의 관여가 있었고, 법인 회계에 반영돼 있어 조 회장의 차명주식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조 회장이 2006년 카프로 주식을 사들이려고 효성의 싱가포르 법인 돈을 차용한 뒤 대여금 채권을 포기(대손처리)하게 한 배임 혐의도 주식을 그룹 소유로 판단해 무죄가 됐다.
조 회장이 2003~2005년 페이퍼 컴퍼니를 마치 효성과 중국 법인의 수출거래를 중개하는 것처럼 가장해 중국 법인으로부터 기술료 명목으로 돈을 받아 698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 또한 무죄가 됐다. 중국법인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 외 배당 이익이 없으면서 2007~2008년 각각 249억5,100만원을 배당한 혐의(상법 위반)는 2007년 부분만 유죄로 인정됐다.
코트 차림에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나타난 조 회장은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으며 피고인석에 앉았다. 재판장이 1시간 가량 판결문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선고를 기다렸고, “실형” 주문을 듣자 충격 받은 듯 한동안 일어나질 못하고 망연자실했다. 그는 법원을 나와 홍보팀 전무 등의 부축을 받으며 취재진의 질문에 말 없이 차량에 올랐다.
장남인 조 사장은 사적으로 쓴 신용카드 대금 16억 5,900여만원을 효성 법인자금으로 결제한 횡령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그가 부친 소유의 해외 비자금 150억여원을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증여 받아 증여세 70억원을 포탈한 혐의는 무죄가 됐다. 재판부는 “횡령액을 사후 변제했다고 해서 양형상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범행 시인하고 잘못 뉘우치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선고에 대해 효성 측은 “실형 선고가 안타깝다”며 “조 회장과 관련된 부분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효성에게 시련은 더 있다. 차남 조현문(47) 전 부사장이 지난해 10월 조 사장과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 등 8명을 수백억원대 횡령ㆍ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형제의 난’이 본격 시작될 전망이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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