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성탄절인 지난달 25일 사전 예고 없이 앙숙 관계인 파키스탄을 전격 방문, 그의 파격 외교에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 등을 놓고 세 차례나 전쟁을 치른 인도 총리가 파키스탄을 방문한 것은 2004년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 이후 11년 만이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70년 해묵은 숙제였던 카슈미르 지역 분쟁 해결에 실마리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까지 나온다.
양국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서 갑자기 방문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급 지도자의 외국 방문에 앞서 여러 단계의 사전 접촉과 조율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기존 외교 격식을 완전히 초월한 것이다. 샤리프 총리 역시 라호르 공항에 직접 나와 영접한 것은 물론이다.
모디 총리는 앞서 양국간 대표적인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에 8,000억 루피(13조9,000억원)를 투입, 고속도로 건설ㆍ복구, 교육ㆍ고용 확대 등 각종 개발지원 사업을 약속했다. 온라인에서는 모디 총리의 파격 외교 행보를 놓고 그의 이름과 디플로머시(diplomacyㆍ외교)를 조합한 ‘모디플로머시’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앙숙 관계였던 파키스탄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호평도 나오지만, ‘위험한 돌출 행동’ ‘코너에 몰린 국내 정치 돌파구 마련을 위한 정치 쇼’ 등의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계속되는 격식 파괴 모디 외교
카슈미르 영유권을 놓고 60여 년 동안 다툼을 벌이던 파키스탄과의 관계에서 ‘외교 훈풍’이 감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국 국경지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져 4일간 양국 주민 20명이 사망하는 등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지난해 2월 모디 총리는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호주 크리켓 월드컵을 화제로 7분 가량 대화했다. 파키스탄 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한편, 샤리프 총리가 1987년 크리켓 월드컵 친선경기에서 현 야당 대표인 임란 칸과 한 팀으로 경기를 치른 것을 소재로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일명 ‘크리켓 외교’로 자칫 벼랑 끝으로 치달을 뻔 한 양국 관계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모디 총리는 또 지난해 11월에 제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개막식에서 샤리프 총리와 따로 만나 양손을 맞잡고 긴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12월에는 양국 외교ㆍ안보 수장들이 태국 방콕에서 만나 카슈미르 지역 국경 안전 문제를 주제로 논의했다. 이 때문에 “양국 관계 개선 움직임이 본격화 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커졌다.
모디 총리의 파격 외교는 트위터 등 ‘SNS 정치’를 즐기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7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에는 트위터에 카자흐어로 ‘카자흐스탄에 오게 돼 매우 기쁘다. 중앙 아시아는 인도의 소중한 친구’라고 소감을 밝혀 큰 호응을 얻었다. 리커창 중국 총리의 생일 때에도, 한국 방문 직전에도 SNS 정치로 우호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난달 25일에는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의 생일을 맞아 트위터에 생일 축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실리와 명분을 쫓는 화려한 외교 행보
모디 총리의 전방위적 화려한 외교 행보는 “인도의 높은 성장 가능성 등 국제 무대에서 인도의 전략적 가치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먼저 일본과의 행보가 눈에 띈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일본간 공조 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을 인도에 도입(뭄바이-아마다바드 간 505㎞)하고 방위 장비ㆍ기술 이전 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원자력 협력 분야에서 5년간의 협상 끝에 일본 기업들이 인도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일본과 가장 우호적이다”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무엇보다 지난해 11월 영국 국빈 방문은 ‘실리 외교의 진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의 식민통치(1877~1946년)의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모디 총리는 영국을 비난하지 않았다. 모디 총리 개인적으로는 2002년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폭력 사태를 방관했다는 이유로 10년간 비공식적으로 영국 입국이 불허됐지만 이 역시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해 3월 의회 광장에 인도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마하트마 간디 동상을 세워준 영국을 치하했다. 역사나 개인사 보다는 미래 상생과 협력을 강조한 것이다. 영국 방문 동안 양국 기업들은 90억 파운드(약 16조원) 규모의 투자 협력 합의서에 서명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외교 비판은 여전
하지만 화려한 해외 순방과는 달리 “국내외 문제를 막론하고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1,000억 달러 투자 유치와 교역 증대’를 장담했지만 지금까지 진척은 별로 없는 상태다. 최근 대파키스탄과의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이는 것을 두고도 “지난 2014년 5월 취임식에 참석한 샤리프 총리와 관계 개선에 합의해 놓고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는 비판이 대두되자 떠밀리듯 행동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파키스탄 깜짝 방문을 놓고 인도 내에서는 당장 “파키스탄과 우호 관계를 꾀했던 정치인들은 모두 오래 살아남지 못한 전례가 있다”라는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제1 야당인 국민회의당(INC) 소속으로 전 정부에서 정보방송부 장관을 지낸 마니시 테와리는 “모디 총리의 모험주의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고 암 아마디당(보통사람당ㆍAAP) 아슈토시도 “모디 총리와 여당은 전임 정부 시절 ‘파키스탄이 테러를 지원한다’며 대화를 반대했었다”고 꼬집었다. 오마르 압둘라 잠무 카슈미르 주 전 총리도 “인도-파키스탄 양국 관계는 큰 제스처 보다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인도 내 잇따른 지방선거 패배로 국내 정치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 모디 총리는 2014년 5월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자신이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의 약진을 위해 노력했지만, 집권 후 처음 치른 뉴델리주와 비하르주에서 모두 부패 척결을 내세운 신생 정당 암 아마디당(보통사람당ㆍAAP)에 1당 자리를 내주며 고배를 마셨고 이후 지방선거에서도 국민회의당(INC)에 연패했다.
이에 모디 총리가 추진 중인 주요 개혁 정책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실제로 소냐 간디와 라훌 간디가 이끄는 국민회의당 지도부는 상원에서 의사 진행을 중단시키는 바람에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등 여당이 추진하는 경제 개혁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다. 소냐 간디 총재는 현재 부동산 불법 취득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여서 대여 강경 대응 자세를 더욱 확실히 하고 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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