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처음 카메라 앞에 섰다. 연기 이력만 37년이다. 활동한 기간만으로도 갈채를 받을 만하다. 그가 극장에서 할리우드에 벌어준 돈만 24억2,787만7,564달러(흥행집계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다. 3조원에 가까운 흥행수입을 유발했으니 현대 미국 영화산업에 끼친 공이 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숙하고 미진한 배우로 치부된다. 어느 배우 못지않은 알찬 연기력과 관객 동원력을 지녔으나 저평가되기 일쑤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42)의 발목을 잡는 건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게 잘생긴(혹자는 잘생겼던,이라는 과거형을 선호할지도) 외모다. 그가 망가진 외모로 연기를 하면 상 욕심 때문이라는 비난이 따랐고, 수려한 외모를 내세우면 지나치게 현실에 안주하는 배우로 비판 받곤 했다. 빛나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상복이 없는 그의 연기 이력엔 이런 편견도 작용했다.
그는 고작 5세에 연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리우드와는 무관한 일을 했다. 곱상한 외모 덕에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400대1의 경쟁을 뚫고 ‘이 소년의 삶’(1993)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도 미소년 외모 덕이었다.
매끈한 얼굴 때문에 좋은 배역을 놓칠 뻔도 했다. 출세작이 된 ‘길버트 그레이프’(1993)의 감독 라세 할스트롬은 그보다 덜 생긴 배우를 원했다. 그는 성인 문턱에서 지적 장애를 지닌 10대 소년을 연기하며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산뜻한 출발이라 할 수 있으나 되돌아보면 아카데미와의 기나긴 악연의 시작이었다.
주류영화만 출연하고 스포라이트만 받았을 듯한 그도 데뷔 초기 수난을 겪었다. ‘길버트 그레이프’로 소녀 팬들의 환호를 샀다고는 하나 ‘퀵 앤 데드’(1995)의 경우 어렵사리 출연했다. 투자배급사인 소니픽처스 경영진이 그의 연기력을 의심했고, 샤론 스톤이 출연료를 대신 주는 조건으로 출연진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일찌감치 폴란드 출신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유럽영화 ‘토탈 이클립스’(1995)에 출연하며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가 맡은 인물은 프랑스 천재시인 아르튀르 랭보. 유명 시인 폴 발레리와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역할이었다.
얼굴만 믿고 사는 배우라는 편견은 ‘타이타닉’(1997)에서 비롯됐다. 6억5,867만2,302달러(약 7,976억원)를 벌어들인 이 영화로 그는 전세계 여성들의 연인이 됐다. 배우로서는 독이었다.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13개 부문을 수상하며 전설의 명작 ‘벤허’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으나 디캐프리오는 뒷전이었다. 인상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정작 ‘타이타닉’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출연을 거부하는 디캐프리오에 매달린 이유는 그의 연기력이었다.
예술적 성향이 짙은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과의 협업도 그에 대한 편견을 부추겼다. 디캐프리오는 ‘갱스 오브 뉴욕’(2002)을 시작으로 ‘에비에이터’(2005), ‘디파티드’(2007), ‘셔터 아일랜드’(2007),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 등 5편을 스콜세이지와 합작했다. 빼어난 연출력을 지닌 감독의 명성에 기대 오스카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올 만했다. 스콜세이지와의 협업으로 그는 수상의 기쁨을 누리긴 했다. 현대 미국 항공산업과 영화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에비에이터’) 연기로 2005년 골든글로브상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을, 1980년대 월가를 발칵 뒤집은 금융사기범 벨포트(‘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역할로 2014년 골든글로브상 뮤지컬ㆍ코미디부문 남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지나친 결벽증 때문에 집에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던 휴즈, 마약과 돈과 여자에 탐닉하며 방탕한 삶을 산 벨포트는 기인의 면모를 지녔다. 디캐프리오의 연기에 대한 호평도 있었으나 기괴한 역할로 부족한 연기력을 메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흥행 성적 톱5
※박스오피스모조 집계.
디캐프리오는 2월 여섯 번째 아카데미 도전에 나선다. 지난 14일 개봉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휴 글래스 역할이 그의 도전장을 대신한다. 19세기 미국 대륙을 배경으로 곰에게 습격 당하고 존재의 이유였던 아들까지 동료에게 잃은 남자를 통해 디캐프리오는 복수를 넘어서는 삶의 본질을 전한다. 디캐프리오는 눈밭을 기고 생선을 생으로 씹거나 버팔로의 간을 날 것으로 먹으며 필생의 연기를 한다(디캐프리오는 채식주의자다). 영하 30도인 숲 속에서 덜덜 떠는 그의 몸에서 피어 오르는 김을 보고 있자면 돈과 명예를 넘어선 한 인간의 집념이 떠오른다. 디캐프리오는 이 영화로 지난 10일 골든글로브상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디캐프리오의 경쟁자는 맷 데이먼(‘마션’)과 에디 레드메인(‘대니쉬 걸’), 마이클 패스벤더(‘스티브 잡스’), 브라이언 크랜스톤(‘트럼본’)이다.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후보들이다. 디캐프리오는 골든글로브상 수상 뒤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라며 초연한 반응을 보였다. “당신은 상을 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것 아니지 않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영화는 이미 완성돼 개봉됐으니 ‘손을 떠났다’는 그의 표현은 합당하다. 그러나 잔인한 대중은 여전히 강한 호기심을 버릴 수 없다. 과연 그는 아카데미와의 악연을 끊고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의 기나긴 오스카 흑역사가 계속될 것인가. 수상 여부야 어찌됐든 2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그에 대한 많고 많은 말들을 또 낳을 것이 분명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아카데미 도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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