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민주당 경선
클린턴 ‘여성 대통령’ 강조 역효과
뉴햄프셔 女지지율 샌더스에 뒤져
참모진 교체 등 새 전략 마련 고심
샌더스, 압도적 승리 후 기부금 밀물
백인 중심인 지지층 확장 쉽잖지만
클린턴 텃밭인 흑인 표심 공략 나서
“힐러리가 여성이라는 외치는 것보다 미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겠다는 샌더스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치러진 지난 9일 아침. 맨체스터 시내 투표소에서 만난 엠버 래비(26ㆍ여)씨는 “클린턴 진영이 들고 나온 ‘여성 대통령’전략은 진부하며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매들린 올브라이트 등 전설적인 미국 원로 여성들의 지지 선언 이후 반감이 더욱 거세졌다”고 덧붙였다. 미국 북동부 지역의 전형적인 20대 직장 여성인 래비 씨의 격앙된 반응은 ‘힐러리를 돕지 않는 여성들은 지옥에 특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는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실언 때문이었다.
이메일 스캔들을 덮기 위해 뉴햄프셔에서부터 서둘러 내놓은 클린턴 진영의 ‘여성 대통령’ 전략이 도리어 역효과를 내고 있다.‘경륜 있는 후보’를 강조했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여성 표심 공략에 성공한 것과 180도 다른 상황이다. CNN 방송 출구조사에 따르면 클린턴 진영은 뉴햄프셔에서 여성 유권자의 44% 지지를 얻는데 그쳐 55%를 기록한 샌더스 의원에게 11%포인트나 뒤졌다.
이에 따라 클린턴 진영은 새로운 선거전략 마련에 부심하는 한편 참모진 교체를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당초 승리를 자신했던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마저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클린턴 전 장관과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캠페인 참모 교체와 전략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핵심 참모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전략가 출신인 액설로드와 조엘 베넨슨 등을 교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여성 유권자에 대한 효과적 공략 방안과 함께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흑인, 히스패닉계 공략도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 진영의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뉴햄프셔에서 20% 포인트 이상으로 클린턴 후보를 누르면서, 기부금이 쏟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뉴햄프셔 승리 직후 18시간 만에 520만 달러(약 62억원)의 선거자금이 샌더스 진영으로 몰렸다. 이는 샌더스 의원이 지난달 내내 모금한 액수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에 앞서 샌더스 의원은 뉴햄프셔에서 승리가 확인된 10일 저녁 연설에서 월가의 큰 손들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클린턴과 달리 자신은 “‘바로 여기, 지금, 미국 전역’에서 보통 시민들로부터 소액기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음 경선지인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리고 슈퍼 화요일(3월1일)에 싸울 수 있도록 10달러, 20달러, 50달러를 기부해달라”고 호소했다.
샌더스 의원은 또 클린턴 전 장관의 텃밭인 흑인 유권자 공략에도 착수했다. 10일 아침 뉴욕으로 이동해 흑인 민권운동가 앨 샤프턴 목사를 만나 지지를 당부했다. 그러나 샤프턴 목사는 샌더스에 대한 지지를 유보했다. 이는 진보성향 백인을 핵심 지지계층으로 둔 샌더스 의원의 외연 확장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으로 비쳐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치전문가와 예측시장에서는 초반 돌풍에도 불구, 클린턴 전 장관의 민주당 최종 후보 낙점 가능성이 샌더스 의원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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