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해 1월 생으로 거짓 신고해도
현장에선 밝혀내기 어려운 실정
지난해 12월 말 딸을 출산한 A씨는 아이의 출생 날짜를 실제보다 6일 늦춰 신고했다. 아이의 법적 생일을 1월로 바꿔주기 위해서다. 그는 조산사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뒤 주민센터에서 출생신고를 할 때 제출해야 하는 출산증명서 날짜를 고쳤다. 거짓 출생신고를 하다 적발되면 처벌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불안하다는 A씨. 하지만 그는 11일 “2015년 1월에 태어난 애들보다 11개월이나 늦게 태어났으니 유치원, 초등학교 같은 반이 되면 뒤처질 수 있어 걱정이었다. 이제는 2016년생 동기 중 가장 생일이 빠른 아이가 됐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12월에 아이를 출산한 부모들 중 자녀가 또래 아이들보다 발육이나 학습능력이 뒤처질까 우려해 출생 날짜를 이듬해 1월로 바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출생 날짜를 바꾸는 건 불법이지만 경쟁사회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부모들은 암암리에 정보를 주고 받고 위법 행위까지 강행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날짜 변경 가능한 조산원·병원 찾고
가정출산 조작 등 다양한 편법 이용
지난해 12월 아들을 출산한 B(25)씨는 출산 직전 ‘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않고 출산 및 진료비를 현금으로 지불하면 출생 날짜를 바꿔주는 병원이 있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B씨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한 뒤 출산 시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지 않으면 100만원 안팎의 진료비, 입원비가 수백만원 대로 치솟는다는 설명을 듣고 결국 출생 날짜 조작을 포기했다. B씨는 “나이는 같아도 지난해 5~6월에 태어난 친구 아이들은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듣고 우리 아이는 개월 수가 모자라 수업을 못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하다”라고 토로했다.
해가 바뀌면 나이도 바로 한 살 더 먹는 한국에서 12월에 아이를 낳은 부모들은 고민이 많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 때 같은 해 1월부터 12월생이 한 학년이 되면서 걱정이 늘었다. 어린 나이 때는 1월과 12월생 사이에 발육 차이가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출산증명서를 원하는 날짜에 만들어주는 병원ㆍ조산원을 찾거나, 가정출산을 했다며 출생신고 날짜를 조작하는 등 다양한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출생신고를 담당하는 서울시내 한 구청 관계자도 “1월만 되면 평소에 없던 가정출산 신고가 꼭 들어오는데 지금 같은 시대에 집에서 출산했다면서 친인척 등을 인우(隣佑)보증인으로 세워 출생신고를 하면 거짓이라는 의심이 든다”며 “그래도 산모수첩, 출산증명서 등으로 최소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등록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쟁사회 속 보호심리 맞물려
암암리 정보 교환·위법행위 강행
거짓 출생신고를 하다 적발되면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죄’에 해당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제재 규정에도 불구하고 거짓 신고를 밝혀내거나 신고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 관계기관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는 못했다. 가족관계등록을 총괄하는 대법원 관계자는 “출생신고 접수 공무원은 실제 출생한 날짜에 대한 형식적 심사권만 있으므로 출생신고서에 명백한 허위나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 한 수리한다”며 “형법상 죄가 성립된다면 개별 사건에서 재판을 통해 처리될 문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지나친 경쟁주의에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와 보호 심리가 맞물리면서 아이의 출생 날짜 조작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출발선을 만들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겠지만, 이렇게 안 하면 뒤처질까 조바심을 느끼는 부모들이 오히려 교육, 입시, 취업 경쟁 등을 부추겨 부모와 아이 모두를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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