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있기 며칠 전 북한과 미국의 비공식 접촉에서 북미 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논의에 합의했다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가 21일 나왔다. 이 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이 접촉에서 평화협정 논의를 요구했고, 미국 정부는 대신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를 평화협정 논의에 포함시키자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했고 곧이어 핵실험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보도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따져봐야 하지만 기존의 북핵 6자회담 합의 내용과 절차 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 우선 걱정스럽다.
2006년 6자회담을 통해 합의된 9ㆍ19 공동선언은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는 것과 병행하여 경제협력과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를 실천하고 동시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평화체제 논의는 핵 포기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WSJ보도 내용에 따르면 핵 포기에 앞선 단계부터 시작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부터 의심스럽기도 하거니와 당사국들의 혼란을 부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이 보도와 관련해 “한미는 어떠한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비핵화가 우선시 돼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과거의 예로 보건대 미덥지 못하다. 북미 접촉 내용을 사전에 알았는지 여부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물론 말과 행동에서 북한의 핵 포기 의지가 확실하다는 전제 하에서 평화체제 논의를 아예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거듭된 합의 파기와 핵 실험 강행, 김정은 체제의 폭주 등에 비춰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우리 정부가 과거처럼 관련 논의에서 소외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한반도 문제는 반드시 우리 정부와의 조율을 통해, 또 우리 정부의 직ㆍ간접적인 주도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을 통해 일치된 입장을 보이는 것은 국가적인 혼란을 막는 데 중요한 일이다.
더욱이 북한이 평화체제 논의에 비핵화를 의제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 북한이 주장해온 대로 핵 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북핵 문제, 북미 협상을 하겠다는 취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6자회담 당사국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시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가 임박해 있지만 향후 협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 기정사실화 시도는 결국 국제적 고립과 압박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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