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한남동 범인 잡고보니
2011·12년 미제사건 범행 드러나
범인 “수감 중 DNA 채취” 진술 불구
검찰 DB엔 등록 안돼 있어
수사선상에 한 번도 오르지 않아
성범죄자 허술한 관리 도마에
미궁에 빠졌던 연쇄 성폭행 사건 범인이 인근 지역에서 또 다시 성폭행을 저질렀다 붙잡혔다. 검찰과 경찰의 공조 미비로 단 한 차례도 수사 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수사기관의 허술한 성범죄자 관리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2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해 12월 용산구 한남동의 한 주택에 몰래 들어가 40대 여성을 흉기로 협박해 성폭행하고 현금과 금목걸이 등 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난 혐의(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특수강도강간)로 이모(60)씨를 24일 구속했다.
조사 결과 이씨의 범죄는 처음이 아니었다. 2011년과 2012년 인근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미제 성폭행 사건(2011년 건은 미수)도 그의 범행이었던 것. 경찰은 당시 두 사건이 같은 동네에서 유사한 패턴을 보인 점을 근거로 동일범 가능성을 점쳤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 나온 범인의 DNA는 경찰이 보유한 기존 성범죄자들의 DNA 정보 중 일치하는 게 없었다. 범행 장소 인근에 폐쇄회로(CC)TV도 없어 두 사건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사건 때 CCTV 등으로 단서를 잡아 경찰은 이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검ㆍ경의 수사 공조가 원활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앞서 1996년과 2004년 두 차례 성폭행 혐의로 각각 7년, 5년의 징역형을 살아 신상 및 DNA 정보가 법무부에 등록됐을 가능성이 컸다. 이씨도 경찰 조사에서 “교도소 수감 중에 DNA 채취를 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검경은 DNA 정보를 따로 관리하고 있었던 탓에 경찰은 검찰 쪽 DNA 정보를 제공 받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2010년 일명 DNA법 시행 이후 검찰과 경찰 모두 시행 이전 자료를 폐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고, 검찰 관계자 역시 “확인 결과 검찰에선 이씨의 DNA를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폭행 전과범 DNA를 검경 어디에서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2012년 9월 발생한 서울 중곡동 주부 살해 사건 당시에도 2주일 전 성폭행을 저지른 성범죄자의 DNA 정보가 없어 추적에 실패했고, 살인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6일 “범죄자 DNA를 검ㆍ경이 따로 관리하는 부분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며 “최근 정부 중재로 두 기관이 DNA 자료를 공유하기 시작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통합관리를 하지 않은 대상자의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애초에 성범죄자로 관리 중이던 이씨에 대해 추적 조사를 소홀히 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씨는 지난달 주소지를 옮기기 전까지 범행 발생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는 ‘위치 추적 전자감독제도’가 시행(2008년)되기 전 형이 확정돼 전자발찌 부착 대상은 아니었으나,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경찰의 관리 목록에는 포함돼 있었다. 경찰이 성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6개월마다 직접 만나 주거지 변동 등 현황을 파악해야 하는 만큼 수사 과정에서 이씨도 주목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관리 대상은 맞지만 6개월마다 주소지를 확인하는 정도”라며 “성범죄자라고 해서 모두 수사선상에 올릴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성범죄자 고위험군에 대한 수사기관의 관리 주기를 현행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성범죄자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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