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물 금리 연일 1%대 머물러
우량채권 인기는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은 금리 인하 속도 너무 빨라
3에서 1% 떨어진 기간 독일의 절반 수준
“성장 둔화에 경기 비관론 만연한 탓보험사 등 자금운용 어려워질 것”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1%대에 진입한 한국의 장기 국고채 금리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당시만 해도 곧 2%대로 복귀할 거란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1%대에 아예 눌러앉을 수도 있다는 우려감도 팽배하다. 일부 개발도상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장기 국채 금리가 주저앉고 있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속도가 훨씬 빠른 편이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26일 연 1.778%에 마감했다. 11일 기록했던 역대 최저치(1.776%)를 뚫고 내려갈 기세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21일 연 1.995%로 사상 처음 1%대에 진입한 뒤 소폭 반등했지만, 그달 29일(1.979%) 이후 1%대에 머물며 저점을 점점 더 낮춰가는 모습이다.
이 뿐이 아니다. 국내에서 발행되는 최장기 국채인 30년물의 경우 26일 종가가 전날보다 무려 0.031%포인트 떨어진 1.875%.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우며 12영업일 연속 1%대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장기 국채 금리 급락은 전 세계적인 안전자산 선호 현상과 맞물려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지수가 추종하는 26조달러 규모의 전세계 국채 가운데 3분의 2 가량의 금리가 1%에 못 미칠 정도다.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40년 만기 국채금리가 지난 25일 1% 밑으로 추락했다. 글로벌 경제 불안에 너도나도 안전자산인 국채를 사들이면서 수익률(금리)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동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경기가 불안정하다 보니 위험자산(주식 등)을 회피하는 현장이 두드러지고 있다”라며 “이 때문에 수익률이 낮더라도 원금 손실 가능성이 적은 우량채권에 대한 선호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반드시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가신용등급 상승 등으로 한국 국채가 안전자산으로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라고 자평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금리와 비교해서도 장기금리가 지나치게 낮게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단기채는 당장의 자금 사정을 반영하는 반면 장기채는 향후 긴 안목의 경제와 물가 상황을 반영한다. 장기간 돈이 묶여있어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한 ‘기간 프리미엄‘ 탓에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게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3년 만기 국고채 금리(26일 1.452%)가 초단기 금리인 기준금리(1.5%)에도 밑도는 상황이 상당 기간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1.778%)의 경우 기준금리가 우리보다 1%포인트 이상 낮은 미국(1.766%)과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을 정도다. 실제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3%대에서 1%대로 진입한 기간을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미국과 영국은 약 9년, 독일은 13년의 시간이 걸린 반면 우리나라는 5년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는 국내 경제의 향후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글로벌 경제불안에 더해 우리나라의 저성장ㆍ고령화 속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빠르고, 그에 따른 성장률 둔화도 급격히 진행될 거라는 경기비관론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이 이미 2%대에 진입했으며 향후 10년 이내에 1%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현대경제연구원)까지 나와있는 상태다. 박혁수 대신증권 연구원은 “장기 국채 금리의 가파른 하락은 우리 경제가 저성장 저물가의 늪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인 만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며 “장기채 금리 하락이 장기화한다면 보험사 등 금융회사들의 자금 운용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진주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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