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에 野 주도권 위기감 작용
탈당 두달도 안 돼 복귀 명분 부족
안철수 당내 위상 강화될 듯
천정배ㆍ김한길 입지는 위축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발(發) ‘야권 통합’ 제안을 3일 만에 거부한 것은 통합 논의가 장기화할수록 야권의 주도권을 더민주에 고스란히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의당 소속 18명의 현역의원 중 안철수 공동대표와 박주선, 신학용 의원을 제외한 15명이 통합 또는 연대를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의원들이 선거운동 현장에서 “정말 통합을 하는 거냐”는 질문 공세에 시달리며 정책 캠페인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새누리당의 과반수 가능성’을 이유로 더민주를 탈당한 지 두 달도 안 돼 복귀하는 명분도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더민주에서 촉발시킨 통합 논의로 국민의당이 사분오열 되면서 당 지지율마저 급락한 것도 발 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당초 이날 심야 의원총회?최고위원회의 연석회의에서 당의 공식 결론이 날 것으로 보는 전망은 많지 않았다. 통합을 최종 의결하는 권한을 가진 최고위원회의 구성상 통합반대파와 통합파가 5 대 5 동수인데다 다수 의원들이 그간 통합 또는 연대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고위원회의 이전 열린 연석회의에서 예상과 달리 다수 의원들이 통합 불가 방향으로 유턴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한 호남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 현장에선 통합 여부로 다른 선거 캠페인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장에선 지도부가 통합이든 독자노선이든 조속히 입장을 정리해 달라고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의원들 사이에선 통합 반대 입장이 워낙 강고한 안 공동대표를 설득하지 못할 바에야 하루 빨리 당의 입장을 정리해 단일대오로 총선을 치르는 편이 낫다고 판단이 많았다는 것이다. 문병호 의원은 연석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견을 개진한 의원들 거의 대부분이 독자적으로 우리 당의 이념과 당의 비전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혼연일체가 되어 열심히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통합 또는 연대를 고려했던 의원들조차 더민주로 복귀한다고 해도 공천 보장이 분명하지 않다는 우려 역시 통합 논의에 소극적인 이유 중에 하나다. 한 호남 의원은 “수도권 의원들과 달리 호남에선 일단 총선에서 당선된 다음 더민주와 더 큰 야권 통합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전략적 판단이 많았다”고 말했다. ‘야권연대 불가’ 방침 발표로 제3당 독자노선을 고수해 온 안 공동대표의 당내 위상이 높아진 반면, 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선대위원장 등 통합에 우호적이었던 인사들의 입지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연석회의가 끝난 후 먼저 회의실을 나왔고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와의 접촉설’에 대해서도 “내가 다 얘기를 했잖아요. 왜 얘기를 그렇게 몰고 가지”라고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안 공동대표는 이날 서울 프리마호텔에서 열린 전국호남향우회중앙회 정기총회에서 야권통합 문제로 갈등을 벌인 김종인 대표와 조우했다. 안 공동대표가 먼저 다가가 “위원장님 오셨습니까”라고 악수를 청하자 김 대표는 “오랜만이에요”라고 웃으며 답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사말에서 야권 통합을 둘러싸고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였다. 김 대표는 “호남의 정권교체를 위해 반드시 야권 통합을 이뤄내 총선에서 이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공동대표 역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식으로 단일화 얘기밖에 하지 못하는 야당으로는 정권교체의 희망이 없다”며 “만년 야당이 아니라 집권할 수 있는 정당으로 키워주셔야 한다”고 맞받았다.
김회경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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