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11월 국회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의사당 현관 앞에서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이 대통령을 영접하던 중 갑자기 윤상현 의원이 접근하자 손으로 밀어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정 사무총장은 당시 윤 의원에게 “다음부터는 함부로 들이대지 말고 의전을 존중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지난 2월에는 윤 의원이 국회 연설을 마치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박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저 여기 있어요”라고 불러 “아, 거기 계셨네요”라는 화답을 이끌어낸 게 화제가 됐다.
▦ 윤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2002년 보궐선거 공천에서 탈락하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우리 윤 박사, 내가 힘이 없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라면서 점심을 산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 후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박 대통령과의 의를 내세워 이명박 후보의 합류 제안을 뿌리친 게 ‘총애’의 이유라고 윤 의원은 생각한다. 그는 박 대통령 ‘누나’ 호칭 설에는 펄펄 뛰지만 “술 마시고 딱 한 번 ‘누님’이라고 불렀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을 만난 후에는 동생 지만씨와도 가까운 사이가 됐다.
▦ 대통령과의 막역한 관계는 그를 호가호위하게 만든다. 지난해 말 부친상을 당한 유승민 의원 조문 자리에서 ‘대구 물갈이’발언을 해 상가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통령 정무특보 때는 “김무성 대표 지지율이 당 지지율 절반밖에 안 된다”며 대놓고 ‘김무성 불가론’을 외쳤다. 올해 초 고 성완종씨가 설립한 충청포럼 회장을 맡은 것도 억측이 무성하다. 총선이 끝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정권 핵심부를 잇는 이른바 ‘윤상현 역할론’이 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킹 메이커가 아닌 ‘킹’이 되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 아슬아슬하던 윤 의원이 결국 사고를 쳤다. 취중이나마 현 집권당 대표를 겨냥해“죽여버려”라는 막말을 퍼부을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완장을 차고 있어도 정도껏 해야 용인할 수 있는데 선을 한참 넘어섰다. 흥분한 민심은 전두환 대통령 사위에 이은 재벌회장의 조카사위 등 그의 사생활과 수백억 원대 재산까지 파헤치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자극적인 언행을 일삼는 일부 진보 진영 인물에 ‘싸가지’라는 딱지가 주홍글씨처럼 붙어있다. 이제 보수 진영에서도 싸가지론이 나올 듯싶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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