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도와 독자권익 침해 여부를 점검하고 편집 방향을 조언하는 독자권익위원회 3월 회의가 16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 1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1기 독자권익위 마지막 회의였던 이날 회의에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인 권광중 독자권익위원장을 비롯 독자의원인 최창렬 용인대 교수, 지평님 황소자리출판사 대표, 김남두 스타마크에이전시 부장, 주부 정희수씨, 대학생 변은샘(가톨릭대 영문과), 윤여진(경희대 언론정보학과)씨와 간사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실장, 진성훈 편집위원이 참석했다.
기사 시각화 노력과 읽고 싶은 기사 늘어
지평님
2월 29일자 선거구 획정 보도에서 한 면에 걸쳐 지도를 배치해 선거구 획정의 문제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3월 9일자 뷰앤‘화살표, 일상을 포위하다’를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이 기사를 읽기 전까지 우리 일상에서 화살표가 행사하는 위력을 한 번도 실감하지 못했다. 기사를 둘러싸고 있는 그래픽상의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니 나도 의식하지 못했던 내 일상의 동선이 선명하게 그려져서 흥미로웠다. ‘아, 화살표로 기사를 썼구나’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기사도 알찼다. 특히 풍향계의 경우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이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이라는 사실을 이 기사로 처음 알게 됐다.
변은샘
다양한 표나 그래프 등의 사용빈도가 늘고 수치를 이미지화하는 것도 이전보다 훨씬 눈에 잘 들어왔다. 덕분에 기사에도 더 눈길이 가고 지면을 넘기면서 지루함이 사라졌다.
총선 보도 균형…필리버스터 보도는 소극
최창렬
3월 4일자 1면 ‘김의 판 흔들기…초읽기 몰린 안’기사는 편집과 제목과 사진이 잘 조화돼 눈길을 끌었을 뿐 아니라 기사도 균형을 갖추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이런 시도가 많았으면 좋겠다. 또 공천에서 새누리당의 구태를 지적하는 3월 5일자 사설은 정확한 지적이라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날 김종인의 야당 통합 제안을 “국민당 흡수 약화…정치술수”로 폄하한 것은 과도한 느낌이었다. 여당과 야당에 대한 기계적 중립으로 보여졌다. 1일자 사설 ‘국회 한심한 작태 반성해야’라는 사설도 기계적 양비론이다.
윤여진
2월 24일 필리버스터 1면 보도는 김대중 전 대통령, 박한상 전 신민당 의원, 김광진 더민주 의원의 사진을 통시적으로 배치해 이번 필리버스터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이후 1면에서 관련 기사를 찾기가 어려웠다. 필리버스터가 총 9일 동안 진행됐지만 1면에 실린 건 중단이 결정된 이후를 포함 3번에 불과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의 뜨거운 관심과 다소 거리가 있는 기사 배치라 생각한다. 필리버스터 정국의 직접 원인인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의 적절성을 따지지 않고, 의장의 발언만을 옮겨 적은 것도 아쉬웠다. 25일 사설에서 “논란의 대상이다”라고 한 줄로 평한 것이 전부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전달하는 것도 공감하기 힘들었다. 25일 필리버스터 3일차를 “필리버스터 피로감” “전날과 온도차이”라고 보도했지만, 필리버스터 정국 동안에 시행한 빅데이터 분석을 보면 키워드 ‘총선’으로 버즈량이 급증한 건 24일, 총선과 관련한 감성어 중 긍정 반응이 부정 반응을 역전한 게 25일이었다.
김남두
필리버스터 사진과 제목을 보면 가볍게 취급했다는 인상이다. 3월 2일자 2,3면에 걸쳐 필리버스터를 결산하는 지면에서 “즐거운 민주주의를 봤다… 시민 호응”이란 제목과 사회면의 “몸싸움 없는 정치 실제로 보니 신기해요” 같은 제목은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던 의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구경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는 눈물이 난다는 심정이 더 많았다.
이세돌 알파고 대국 보도 일관성 부족
지평님
9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이뤄지기 전부터 외신 등에는 그 의미를 진단하는 다양한 기사가 있었는데, 한국일보는 과학적 윤리적 차원의 담론보다는 승패를 예측하는 데 머문 느낌이다. 반면 1차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패한 후 10일자 사설에는 ‘인류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뜨린 인공지능’ 자극적 표현을 사용해 독자들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한 것 같다. 의미가 깊은 이벤트에 선제적 대응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변은샘
3월 11일자 ‘이어령이 보는 인공지능 세계’와 연재기획‘성큼 다가온 AI 혁명’은 이번 대국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 흥미롭고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어령’에는 “이세돌을 인간의 대표로 보고 승패에 연연하는 것은 대중적 흥미에만 영합하는 것”이란 언급이 들어 있는데, 다음날 이세돌 9단이 승리하자 ‘인류의 자존심 웃었다’는 제목이 뽑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세돌의 패배를 인류의 실패처럼 여기며 기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는 보도 태도를 보인 다수 국내 언론과 차별성을 찾기 힘들었다. 앞으로 AI기술에 뒤떨어진 한국 과학의 문제점과 대안을 지적하는 차별화된 기사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희수
바둑을 배우는 어린 학생들이 이세돌의 패배를 보고 눈물 흘리는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의 의미를 인간과 기계의 대결로 너무 심각하게 다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둑이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게임이고 거기서 AI가 인간 중 최고수를 이겼다 해도 AI는 과학자를 돕는 연구 보조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닌가. 3월 14일자 ‘마음만은 이세돌~ 종묘공원서 수담 나누는 시민들’ 사진을 웃으며 봤다. 이 정도로 담백하게 다루는 게 독자들의 신기술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줄여주는 보도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기획기사 눈길
지평님
2월 26일자 문화면의 ‘복면기자단 ? 혜민스님 책 관련 방담’은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문화 출판계의 의식을 잘 드러내줬다. 경제 정치 등 다른 면으로도 확대하면 좋을 것 같다.
김남두
3월 4일자 ‘보험사기법 국회통과…나이롱 환자 줄어드나’ 기사는 보험사의 입장만 반영된 기사로 보였다. 변고를 당한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데 소극적인 보험사의 문제도 지적했어야 한다.
변은샘
8일 여성의날 맞아 쓴 ‘넘사남 기사’를 흥미 있게 읽었다. 앞으로도 국내 여성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여성뿐 아니라 가부장제 하에서 피해를 입는 남성의 문제도 다뤄주었으면 좋겠다. 최근 ‘가모장’이란 단어가 유행하는 데 이 문제를 남녀의 대립구도로 몰고 가는 일부 보도가 우려된다.
정희수
2월 24일자 ‘푸짐한 1인분? 아쉬운 1인분? 당신의 양은 얼마 만큼인가요’ 기사는 1인분을 어떻게 정하는지 요리사들에게 묻고, 식품업계에서 최적의 1인분을 찾기 위한 노력을 보여줘 재미있었다. 반면 23일자 ‘흙수저 걸그룹, 시간을 달려서 소녀시대 넘보다’의 기사에 흙수저라는 표현은 가슴 아픈 사회현상을 희화화하고 정확하지 않는 데 사용한 것 같아 눈에 거슬렸다.
삽화기자도 이름 실어야, 용어선택 신중하길
권광중
우선 한국일보 홈페이지에서 ‘지금은 미디어 빅뱅시대 기획’을 찾아 읽었는데, 인덱스에서 그 기사가 몇 회 기사인지 알 수 없어 찾기 불편했다. 또 어느 기사가 메인이고 어느 기사가 박스기사인지도 알기 힘들다. 진은영의 아침을 여는 시, 이원의 시 한송이, 김이구의 동시동심을 관심 있게 보는데, 삽화를 누가 그렸는지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작권법에는 저작권자가 특별히 싣지 말기를 요청하지 않는 한 표기해야 한다고 돼 있다. 3월 5일자 ‘박승춘 처장 지각출석에 보훈 법안 11개 처리 무산’ 기사의 경우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갑질에 대한 비판이 없어 아쉬웠다. 국회의원들을 일방적으로 회의를 연기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기관장이 고작 2, 3분 지각했다고 보훈단체들의 숙원법안을 무산시킬 수 있는가. 3월 12일자 사설 ‘포털 등 사업자의 개인정보 보호장치 중요해진 대법 판결’의 경우 개인정보란 단어 사용이 부적절하다. 사설에서 언급한 ‘개인정보’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에 규정한 이용자의 성명,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ㆍ해지일 등 6가지 ‘통신정보’를 혼동해 쓴 것 같다. 통신사실 확인자료 등 ‘개인정보’는 통신비밀보호법으로 보호되며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열람할 수 있다. 이것으로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 1기 회의를 마치겠다.
이계성
지난 1년 동안 열과 성을 다해서 한국일보를 꼼꼼히 일고 좋은 조언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여러가지 제안을 해 주셨는데 최대한 지면에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은 모두 회의록에 남아있으니 계속 반영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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