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선 3월부터 본격적으로 멜(멸치)이 잡히기 시작한다. 육지에서는 말린 멸치로 볶음이나 육수 등의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데 남해안을 비롯한 제주 지역에서는 통통하게 먹음직스러운 멜로 조림, 맑은 국, 튀김 등으로 조리를 한다. 갈치와 달리 통째로 조린 멜은 한 입에 한 마리씩 먹을 수 있어 담백하고, 맑은탕으로 끓여 내면 각재기국보다 진한 풍미가 있다. 튀김 역시 새우와 달리 고소한 생선 고유의 맛이 있는데 생멸의 선도가 떨어지면 비린내가 많이 날 수 있으니 그 부분만 유의하면 생멸의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서귀포항의 인근 H식당은 활아귀회로 유명하다. 이 식당의 수족관에는 활아귀로 가득 차 있다. 아귀 회는 다소 생소하지만 토박이들에게는 향토 음식으로, 관광객들에게는 호기심 탓에 꽤나 인기가 있다. 물컹거리는 식감 때문에 횟감으로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근처의 천지연 폭포나 새연교에 여행 오신 분들께 한번쯤은 추천해 드릴 만하다. 특이한 점은 1인분 기준이 아니고 한 상 차림으로 판매된다는 것. 2인분이나 4인분이나 가격은 같다. 주인장 설명으로는 큰 놈 한 마리, 작은 놈은 두 마리 기준이지 사람 수 기준은 아니라고 하신다. 회 외에도 맑은탕과 찜도 함께 제공되니 가격대비 그리 서운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생선은 어종에 따라 제철이 있다. 서귀포에서 갈치와 고등어는 가을에 살이 올라 고소하며 살이 연약한 옥돔은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1월에서 3월까지 먹어야 보다 단단하고 야물 찬 맛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항구의 많은 배들과 경매장에서는 계절에 관계없이 갈치, 고등어, 옥돔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높은 선호도 때문에 품질과 관계없이 어부들은 좋은 가격에 잘 팔리는 생선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갈치 값이 예년에 비해 크게 오른 것은 그 동안의 남획 때문인 듯하다. 이제 갈치를 잡기 위해서는 먼 바다까지 채비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이동 거리가 길다 보니 유류비용도 많이 들고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배 안에 급속 냉동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또 그물로 잡는 먹갈치에 비해 낚시로 잡아 비늘에 상처를 덜 주는 은갈치가 곱절 이상의 수익이 있기 때문에 어부들은 고된 작업을 마다 않고 주낙으로 잡아 올린다. 맛의 차이는 없는데 외관으로 상품 가치를 평가하는 감귤과 같은 논리가 아닌가 한다
제철이 오기도 전에 포획이 이루어져 지난 가을부터 은갈치 13미(10kg 한 상자) 가격이 20만원 대 중후반에서 50만원 대까지 치솟아 올랐다. 이로 인해 영세한 식당들에선 제주 갈치보다 훨씬 저렴한 세네갈 갈치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비슷한 사정으로 제주 고등어보다는 노르웨이산 고등어 구이를 파는 식당도 많다. 물론 옥돔도 중국산이 갈수록 보편화 되는 추세다. 한 번은 옥돔 도매업을 하시는 지인 분에게 대형 연회 행사 준비로 건 옥돔 시세를 묻자 같은 바다에서 잡힌 거라며 국산보다 중국산을 추천해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