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관리 부담 등 부작용 우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중소기업 지원 등에 빌려준 자금이 지난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자금경색이 일어난 곳에 대한 지원은 중앙은행의 역할이지만, 최근 한은의 대출금이 과도하게 급증하고 있어 물가상승ㆍ화폐가치 하락 등 국민 부담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31일 한은이 발표한 ‘2015년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의 지난해 대출금은 18조7,296억원으로 전년(14조1,624억원)보다 32%(4조5,672억원) 급증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1년 이후 최대치다. 한은의 대출금은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14조원, 국제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13조원에 그쳤었다.
대출금 급증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가 증액(15조원→20조원)되면서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촉진을 위해 한은이 은행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여기에 한은의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에 따라 산업은행에 3조4,313억원을 빌려준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 급증한 한은의 대출금을 두고 발권력 동원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2년 7조8,086억원이던 한은의 대출금은 2013ㆍ2014ㆍ2015년 각각 전년보다 18%ㆍ54%ㆍ32% 폭증하며 3년 사이 2.4배가 늘었다. 물론 한은법은 유동성이 악화한 금융기관(제65조)이나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한 영리기업(제80조)에 돈을 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 많은 돈이 풀리면 화폐 가치가 낮아지고, 물가가 오르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유동성 관리 부담도 상당하다. 한은은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시중에 늘어난 유동성을 흡수하는데, 증권을 매수한 기관 등에 한은이 지불한 이자 비용만 지난해 4조1,021억원에 달한다. 2015년 통화안정증권 발행 잔액은 184조원이다.
최근엔 새누리당이 총선 공약으로 ‘한국형 양적완화론’을 내걸면서 한은의 무리한 발권력 동원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는 모습이다. 해당 공약은 한은이 산업은행 채권과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직접 인수해 시중에 돈을 직접 공급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7명 중 4월에 교체되는 4명의 후보자 모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 등 친정부 인사라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부분이다.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정부 재정정책과 달리 한은은 금통위 의결만으로 돈을 찍어 대출을 해줄 수 있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은의 대출금 규모가 크게 늘었음에도 국내 경기가 부진한 건 현재 경제위기가 유동성 부족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뜻”이라며 “한은이 발권력을 남용할 경우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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