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政 구조조정 공감대 확산
위기업종부터 과감하게 수술
구성원 모두의 고통 감내 필요
전문가 “대우조선 먼저 처리해야
다른 구조조정도 명분 얻을 것”
총선 이후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속도론’과 거대 야당의 ‘원칙적 찬성론’이 맞물리면서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인 한계산업 구조조정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추진 과정에 들어서면 과거 숱한 구조조정 시도가 그랬듯, 해당 기업과 금융기관의 이해관계, 노동계의 반발 등에 부딪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 뼈를 깎는 체질개선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도 불투명하다는 데 이미 공감대는 형성된 상황. 2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위기 업종부터 정밀하면서도 과감하게 수술해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이상적인 구조조정 시나리오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구조조정이 시장과 채권단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해운, 석유화학, 철강 등의 업종은 업황 부진 속에 켜켜이 부실이 쌓이면서 시장 자율의 구조조정은 실패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다 주도적으로 나서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후 현대건설과 하이닉스의 구조조정 책임자였던 이연수 당시 외환은행 부행장(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은 “역대로 정부가 진두지휘를 하지 않고 구조조정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며 “과거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방식은 곤란하겠지만, 책임과 리스크를 회피하지 않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채권은행 뒤에 숨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높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그간 구조조정이 부진했던 것은 노사와 금융당국 간의 암묵적 담합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채권은행 간 ‘자율협약’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추진된 결과, 금융당국이 국책은행을 내세워 정권에 부담이 되는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사실상의 대주주로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처리 방안부터 정부 스스로 명확히 해야 향후 다른 기업과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에서도 명분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산업은행은 작년 10월 5조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대우조선해양에 단일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5조2,000억원의 추가지원 방안을 발표한 이후 여전히 불투명한 업황에도 불구, 지금껏 상황을 관망 중이다. 당시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이 상반기 3조2,000억원에 이어 추가로 2조1,000억원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히면서도 "부산ㆍ울산ㆍ경남 지역 경제의 10%를 차지하는 대우조선해양의 영향력을 감안해 국책은행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폈다. 다른 채권은행 고위 임원은 “현재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다른 기업들과 비슷한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에만 이런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지역경제나 고용 등 이런 저런 이유를 들이대면서 회피하지 말고 정부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부터 과감하게 칼을 들이대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부실의 책임이 있는 대기업 오너들의 결단도 요구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는 “사주들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정책자금 투입돼 향후 회사가 살아나면 주식가치 상승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어 기업을 놓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부실 책임자들에게 채권단과 납세자가 끌려 다녀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구조조정을 기대하지 말 것도 주문한다. 실직 등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조금의 고통도 감내할 수 없다며 구조조정을 미뤘다가는 더 큰 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에서 야당이 ‘실업대책 선결’만을 고집할 경우, 자칫 기업 구조조정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노동자ㆍ주주ㆍ채권자 등 이해당사자 모두가 행복한 구조조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시장 논리에 따라 구조조정을 하되, 갑작스런 실업 충격은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신속하고도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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