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리퍼블릭 사태로 도마에
변호사들 이면계약 등 편법 기승
“시간당 30만원으로 약정하고
실형 나오면 1억 이하만 계산”
선임계 내기 전 ‘기록검토비’ 약정
인맥 동원 미리 재판결과 검토도
업계 공익적 이미지 실추 우려
보수에 상한선 정해야 목소리도
정운호(51ㆍ수감)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여성 변호사 A씨 폭행 의혹과 함께 과다 수임료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형사사건 성공보수 편법 약정 실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이 무효라고 판결한 이후 변형된 형태로 성공보수를 받는 변호사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 드러난 것이다. 정 대표가 “착수금 20억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며 A 변호사를 폭행한 것으로 알려진 후 A 변호사는 “총 16건의 사건에 대해 30여명의 변호사가 받은 총액”이라고 반박해 공방 중이다. A 변호사는 정 대표 측으로부터 받은 50억원 중 보석신청이 기각된 후 30억원을 돌려주기도 했다.
최근 변호사업계에서는 수사, 구속, 재판 등 형사사건의 주요 단계가 진행될 때마다 절차별 수임료를 받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기본수임료를 받고 추가로 시간제보수를 약정하기도 한다. 성공보수 대신 수임료를 세분화해 받는 것이다. 그 동안 착수금에 모두 포함시켰던 교통비와 법정출석비, 접견비 등을 따로 청구하거나 의견서 제출이나 법정 출석 횟수에 따라 추가 수임료를 받는 식이다. 이 경우 특별한 결과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착수금 명목으로 수임료를 한꺼번에 받은 뒤 약속한 목표가 달성되지 않으면 일부를 돌려주는 편법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과거 성공보수를 포함해 일시에 받던 선수금 형태로 수임료를 받은 뒤 결과에 따라 일부를 돌려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5대 로펌 소속 K 변호사는 “성공보수 무효 판결을 우회하기 위해 석방되면 받을 보수를 일단 착수금에 넣고 실패하면 돌려주는 이면계약을 맺는 게 법조계의 검은 비밀”이라고 말했다.
형사처벌 수위와 연계한 타임차지 지급 방식도 새로운 관행이다. 다른 5대 로펌 소속 H 변호사는 “시간당 30만원의 타임차지를 약정하되 실형 등 의뢰인이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오면 1억원 이상은 계산하지 않는 ‘캡 씌우기’ 방식도 있다”며 “선고ㆍ집행유예나 보석허가 등을 받으면 타임차지를 모두 계산하는데 이는 사실상 성공보수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명목은 달라도 본질은 성공보수를 미리 받은 것이기 때문에 판례에 반하는 약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름만 달리 붙여 법망을 피하기도 한다. 정 대표 사건에서 H 법무법인은 ‘기록검토비’ 명목으로만 5,000만원을 약정했다. 이름만 봐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 사건을 맡지 않고 오간 돈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선임계를 내지 않고 인맥을 동원해 재판부에 로비를 하거나 재판장과 동기인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하는 등 손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K 변호사는 “기록검토비는 정식 선임계를 내기 전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검토하는 비용”이라며 “변론 단계가 아니니 변호사는 위임장을 안 내도 되고 변호사법 위반을 피해간다”고 말했다.
변호사시장에서는 수임료는 내려가는 현실에서 나쁜 인상만 확대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22~23일 열린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회의에서는 안건도 아닌 ‘과다 수임료 문제’가 큰 이슈였다. 장성근 회장은 “비현실적인 수임료가 많은 변호사들을 좌절시켰다”며 “무료변론 등으로 국민들에게 쌓아둔 변호사의 공익적 이미지도 크게 실추됐다”고 말했다. 대형로펌의 한 대표변호사도 “우리 로펌 형사사건 수임료는 5,000만원을 넘지 않는다”며 “1년 형사사건 총수익을 모두 합쳐도 20억원을 넘을까 말까 한 현실인데, 이례적인 금액의 착수금으로 인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잘못된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퍼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변호사보수에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중견 법조인은 “무슨 명목이든 50억원을 받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며 “고액 수임료는 전관예우와 변호사의 장사꾼 기질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꼬집었다. 이어 “변호사법에는 보수에 관한 규정이 없어서 부르는 게 값”이라며 “보수에 관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0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변호사법관계소위는 변호사 보수에 상한을 정하는 ‘변호사보수 등의 기준에 관한 법안’을 논의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개인간 계약을 제한하고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외국 로펌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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