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25일 채권단에 자율협약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미 자율협약을 맺은 현대상선과 함께 우리 해운업의 양대 산맥의 경영위기가 발등의 불이 됐다. 한진해운은 부채가 5조6,000억 원에 달해 부채비율이 정상범위의 4배인 800%를 웃돈다. 게다가 6월 말 1,900억 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놓여 독자적 자구노력만으로는 경영정상화가 어렵다고 판단해 자율협약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한진해운이 한계 상황에 몰린 것은 과다한 용선료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매출액(5조7,685억원)의 30%를 웃도는 1조8,793억 원을 용선료로 냈고, 한진해운도 연간 9,000억원 이상의 용선료를 지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턱없이 비싼 가격에 체결한 장기 용선계약 때문이다. 이후 해운 물동량이 줄고 운임은 떨어지면서 용선료는 시세의 4~5배에 달했다.
수출입화물의 99%를 책임지는 해운업의 위기는 우리경제에 치명타다. 해운 관련업종 종사자만도 29만 명으로 20만 명 전후의 조선업보다 많다. 2008년 이후 퇴출당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해운사만도 STX팬오션, 대한해운 등 80여 개에 이르고, 해운사들은 영업의 근간인 선박과 컨테이너, 해외터미널까지 해외 업체에 팔아 치우고 있다. 해운업 전체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규모 부실을 초래한 이들 해운사의 부실 경영 책임이 우선 크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해운 산업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와 금융당국이 무얼 했는지도 의문이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해양수산부를 없앴고, 박근혜 정부에서 해수부를 부활시켰지만 세월호 참사로 다시 정책적 지원이 중단됐다. 무려 7년 간이 공백이었다. 더욱이 해운업계의 부실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총선 등 이런저런 핑계로 구조조정을 미루어 부실만 키웠다. 그 동안 덴마크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이 국적 선사를 전폭적으로 지원, 영업력을 키울 수 있게 한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미 늦었지만 정부는 해운업계에 대한 지원과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한다.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구조조정은 철저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 자율협약 이후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속도를 내는 게 관건이다. 일정이 늦어질수록 피해는 커진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경영 책임도 확실히 물어야 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포기, 자구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사재출연 등의 추가 조치도 이끌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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