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요.” 뻥튀기 아저씨의 장난기 넘친 호령 소리에 놀란 마음에 두 귀를 막고 물러섰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그런 재래 시장의 추억을 다시 회상하게 하는 향수의 장소가 제주도의 오일시장인 것 같다.
제주 지역 도처의 항구에서 올라온 다양하고 신선한 생선과 제철을 맞아 풍성해진 야채와 과일들, 옷 가게, 신발 가게, 약재 가게, 즉석 참기름 가게에 심지어 강아지와 병아리를 파는 노점상까지 실로 없는 것 빼고는 다 파는 시장이 오일장이다.
오일장은 제주도 전역에서 일제 시대부터 생선, 해물, 야채, 과일을 생산하는 사람들이나 가족, 또는 상인들이 날짜에 맞추어 판매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해안 일주 도로가 개통되며 모슬포, 중문, 서귀포, 표선, 성산까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한다.
1일과 6일에는 모슬포와 성산, 2일과 7일에는 안덕, 표선, 3일과 8일에는 중문과 남원, 4일과 9일에는 서귀포에서 장이 열린다.
비석 거리나 동홍 로터리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자리 잡은 서귀포 향토오일시장은 규모 면에서 단연 서귀포 지역에서 가장 크며 대략 5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전에는 서홍동 솜반천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1995년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번화가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 넓은 주차장을 확보하고 있으나 장날이면 수 많은 자동차가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노선 버스가 장날에 맞추어 증편 운행되지만 장을 본 물건이 많거나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아 아직은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휴무일과 겹치는 장날이면 어김없이 시장을 찾는다. 특히 해산물을 파는 가게는 꼭 들리게 된다. 한 계절 앞서 메뉴 개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번 장날에는 참돔이 제철이라 씨알 좋은 놈들이 많이 보이고 날씨가 포근해져서 인지 민어, 각재기 등 여름 생선도 자리를 잡고 있다. 제철에 관계 없이 일년 내내 단골로 나오는 옥돔, 고등어, 갈치, 객주리, 복어, 은대구에 귀한 돌돔, 금태까지 오랜만에 고깃배가 많이 나갔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활어로 판매하는 참돔은 양식으로 수급이 이루어져 1~2kg 크기가 대부분. 지방이 끼기 시작해 고소한 맛이 좋은 4~5kg의 참돔은 재래시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생선을 파시는 아주머니께 오늘 생선이 싱싱하냐고 물어보자 어처구니가 없으시다는 듯 참돔과 민어의 빨갛고 신선한 아가미를 보여주시며 새벽에 잡아 올라온 거라고 하신다. 지난 주 서울에 갔을 때 민어 두 토막의 시세가 3만원 내외였는데 활어나 다름 없는 2kg 넘는 싱싱한 민어를 3만원에 가져가라고 하시니 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 한 가지 팁은 서귀포의 웬만한 재래시장에서는 지나친 흥정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재래시장하면 의례 흥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생선 가격을 깎으려고 하자 아주머니께서 화를 내시곤 “아저씨가 덩치 값도 못하고 생선 한 마리를 치사하게 깎냐”며 “안 파신다고 다른데 가서 사라”는 것이다. 안 깎아 주셔도 사려고 했던 건데 순간 당황해서 자리에 서 있자 옆에서 일을 도와 주시던 남편 분이 일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니 언짢게 생각하지 말라고 포장을 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집에 돌아와 이웃에게 그 일을 애기하니 서귀포에서는 시장에서 물건 값을 잘 깎지 않는다고 하신다. 제 값을 주면 덤으로 더 챙겨 주시고 오일장의 상인들은 시일에 따라 함께 옮겨 다니시기 때문에 다른 가게에 가도 정찰제처럼 같은 가격이란다. 다음 장날 때 역정을 내셨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기억이 나시는지 조금 쑥스러워 하셨다. 그날 이후 제주의 재래시장에선 이제 흥정을 하지 않는다.
오일장의 영업 시간은 대형 마트나 백화점처럼 정해져 있지 않아 일반적으로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로 보는 것이 좋다. 겨울 보다는 여름에 장을 여는 시간이 길고 생선의 경우에는 오전보다는 오후에 다소 가격이 내려간다. 오일장의 여건상 상인들이 장을 옮겨 가야 하기 때문인데 선도도 그렇고 오후에 가면 필요한 해물이 다 팔리는 경우가 많아 오전 중에 장을 보는 것이 좋다.
생선과 달리 야채와 과일은 제주에서 생산된 품목 이 외에 육지에서 내려온 상품들도 많다. 감귤 이 외에 하우스 재배를 하지 않는 과일인 사과나 배 등 거센 바람의 영향으로 낙과의 위험이 많은 품목들은 대부분 육지의 산지에서 내려온다. 감귤 시즌이 지나서인지 시럽에 절여 먹거나 후식의 차로 일품인 금귤이 한창이고 성주의 참외도 눈에 띈다. 구황 작물은 아직도 제주 산이 많아 안덕의 비트나 콜라비, 구좌의 향 당근은 언제나 먹음직스럽고 향긋한 한라산 표고 버섯 옆에는 대관령 고랭지 무가 출하 되기 전까지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제주 무가 길게 늘려져 있다.
오일장에는 생선, 과일, 야채 이 외에 건 해물, 젓갈, 반찬 가게, 곡물, 화원, 대장간 등도 간간이 보이는데 의외로 옷 가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의류 할인 매장이 많지 않아 시내에서는 저렴한 옷을 구입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인지 아직은 장사가 꽤 되는 모양이다. 사실 서귀포에선 인터넷이나 홈쇼핑으로도 의류를 많이 사는데 지난 여름 홈쇼핑을 통해 묶음 판매되는 티셔츠를 사서 입고 다니다 같은 옷을 입으신 분들을 너무 많이 보여 서로 흘깃거리며 지나갈 때가 있었다.
서귀포 향토오일시장은 이것 저것 구경거리가 많아 예전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서귀포 올레 시장에 비해 고객층이 관광객보다 도민들의 비율이 많기 때문에 찾는 고객 수는 옛날만 못하지만 ‘제주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한층 친숙한 시골 분위기는 남아 있는 듯 하다. 아직도 추석이나 설을 앞둔 주말에 장이 열리면 2만 명의 고객이 찾는다고 한다.
주말이라서 더욱 북적대는 시장 인파 사이로 흘러나오는 갖가지 소리와 냄새가 넘쳐 눈과 코도, 귀도 항상 즐거운 장날에 물건을 고르는 아낙네들의 풍경과 덤으로 인정을 담아주는 후덕한 인심이 서귀포 향토 오일 시장의 훈훈한 매력인 것 같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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