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H 물질 용도 미 표기 등
기준 미달했지만 허가 내줘
두 달 뒤엔 안전성 인증까지
제조사 경고문구 있었어도
흡입독성 실험 요구 안해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과 함께 폐 손상 인과성이 인정된 가습기 살균제 세퓨의 원료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처음 수입한 업체가 유해성심사를 신청하면서 용도를 밝히지 않는 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정부의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막지 못한 정부의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감독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10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PGH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신청서에 따르면 2003년 2월 수입대행업체 S사 대표 김모씨는 국립환경연구원(현 국립환경과학원)에 해당 신청서를 제출하며 PGH의 용도와 연간 수입 예정량을 표기하지 않았다. PGH의 사용 농도(30% 이하), 녹는점(60~80도), 용해도(100%) 등 화학적 특성 자료만 제출했다. 당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화학물질 수입업자는 용도 및 수입량, 유해성 등을 모두 기재해 유해성 심사를 신청해야 하며, 국립환경연구원이 심사해 추가 유해성 검증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화학물질을 수입할 수 있다.
S사가 기준에 맞지 않는 신청서를 제출했는데도 환경부 국립환경연구원은 두 달 뒤 심사를 통과시켰다. 6월에는 관보에 PGH가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했다. 관보 고시는 국내에 처음 수입된 물질에 대해 안전성을 인증해 주는 절차다.
S사 대표 김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입 당시 용도에 대해 “세탁세제 용도로 기억하는데 오래 전이라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수입해 판매한 것이 아니고 화학물질 수입 절차를 잘 모르는 업체를 위해 대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PGH가 어떻게 세퓨를 제조한 영세업체 버터플라이이펙트까지 흘러 갔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환경부는 김씨가 유해심사 신청서에 첨부한 케톡스사의 보고서만 보고 PGH의 수입 허가를 내준 것으로 추정된다. 케톡스 보고서에는 PGH가 포함된 살균제 ‘아그로셉트(Agrosept)’가 농약부터 서적 필름 등의 보존제, 고무 나무 직물 등의 항균제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항균 카펫 등에 쓰이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로 쓰이면서 흡입독성을 일으킨 것처럼, 용도에 따라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진다. PGH도 정부가 흡입ㆍ피부자극 독성실험 결과를 추가로 요청해야 했지만 이런 과정은 없었다. 게다가 케톡스사의 보고서에 기재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연소된 가스를 흡입하지 말 것’ ‘사람이 흡입했다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것’ 등 흡입독성에 대한 경고가 포함돼있고, 김씨가 PGH의 환경배출 경로로 ‘스프레이나 에어로졸 형태’라고 적었음에도 추가 심사는 없었다. 환경부는 최근 해명자료를 통해 “환경에 직접 노출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따로 흡입독성실험을 요구하지 않았다”고만 밝혔다.
정부의 1ㆍ2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에서 세퓨 사용자는 41명이며 이 중 14명이 사망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한 변호사는 “환경부가 추가 심사를 통해 용도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면 유해성 심사가 적법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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