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신입생 등 실태조사
'교수에게 인생관 조언 기대' 10년전 44%서 35%로 줄어
교수들 실적 압박에 무신경
진로 정보도 선배에 더 의존
“지도교수님이 깐깐하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강의 질문 외엔 말도 못 붙여 봤어요.”
지난해 서울대에 입학한 권모(20)씨는 2년 전만 해도 점심시간과 방과 후면 교무실을 불쑥 찾아가 담임선생님과 대화하기를 좋아하던 고교생이었다. 하지만 대학 입학 뒤 그의 사제(師弟) 관은 180도 바뀌었다. 고교 담임은 입시 및 진로 고민은 물론, 교우관계 문제 등 제자의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는 어른이었으나 대학에서 선생님은 그저 ‘어려운 존재’ 일 뿐이다. 배정된 지도교수에게 개인 면담을 신청하려고도 했지만 이메일을 보내 허락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포기했다. 권씨는 “교수들이 고교 교사보다 훨씬 바쁘기는 해도 지나치게 무신경한 느낌”이라며 “대학에서 스승의 위상이 ‘지식전달자’로 전락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상아탑에서 교수와 제자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제자는 스승을 찾기가 부담스럽고, 스승은 연구에 치여 제자를 보살필 여력이 부족해졌다. 13일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매년 신입생과 졸업예정자를 상대로 내놓은 ‘학생 실태조사’ 결과를 10년 간격을 두고 비교해 보면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우선 교수에게 전공지도 외에 친밀감이나 조언 등 인생 선배로서의 역할을 바라는 대학생들은 계속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 입학한 05학번 2,413명 중 ‘교수에게 인간적 유대와 인생관 조언을 가장 기대한다’는 응답이 43.8%에 달했으나, 15학번 신입생들(1,322명)은 35.1%만 ‘그렇다’고 답했다. 학부 4년 과정을 마친 졸업예정자 조사에서는 차이가 더 벌어져 2005년 56.4%에서 2015년 41.4%로 15%포인트나 줄었다.
정서적 연대뿐 아니라 전공 탐색이나 진로 결정에서도 학생들은 더 이상 교수에게 의존하지 않았다. 전공학과 선택 시 도움을 받고 싶은 경로로 ‘교수와의 대화’를 꼽은 서울대 신입생은 10년 전 41.8%에서 지난해 17.5%로 급락했다. 그 빈자리는 학부 선배(26.8%)와 전문상담원(16.9%)이 채웠다. 졸업예정자들에게 대학교육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역시 ‘지도교수와의 상담’ 항목은 5점 만점에 2.76점을 기록, 도서관 이용(3.81), 수업내용(3.52) 등 12개 문항 중 최하점이었다. 신입생 허모(20)씨는 “교수에게 좋은 학점 외에 다른 기대는 하지 않는다”며 “현실적으로 교수들의 일정이 빡빡해 학생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주기 어렵고, 진로 정보는 직접 겪어 본 선배들의 조언이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수들 입장에서는 챙겨야 할 학생이 너무 많다. 지난해 대학교육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전국 대학의 전임교원 1인당 평균 학생수는 27.3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평균(15명)의 두 배에 가까웠다. 서울 한 사립대에서 조교로 일하는 대학원생 김모(27)씨는 “대학마다 지도교수, 전공교수 등 학생지도 제도를 두고 있지만 학생이 너무 많다 보니 교수들이 담당 제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생들이 바빠진 것도 교수와 제자 사이를 멀게 만든 원인이다. 극심한 취업난에 제자들이 스승과 연을 이어갈 여유가 줄어든 것이다. 2014년 서울대를 졸업한 김모(28)씨는 “7,8년 전만 해도 교수님이 일과 후 술 한 잔 하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제자들이 제법 모이곤 했는데, 요즘엔 대학생들이 정량화할 수 있는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하느라 사제의 정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인 조흥식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학생들은 일자리 걱정이 교수와의 관계를 통해 해소되지 않는다고 보고, 교수들 역시 승진에 필요한 연구실적 압박 등으로 제자를 멀리하게 된다”며 “성과에 얽매인 사회 분위기가 대학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