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오일장터의 여기 저기를 구경 다니다 보면 한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 오전에 도착해서 장을 보아도 금새 점심 시간이 되어 버린다. 장을 보다 중간에 호떡, 핫도그, 어묵, 꼬치, 튀김, 떡볶이 등의 주전부리를 사먹으며 다니기도 하지만 꼭 빼놓지 않는 곳은 장터 식당들이다. 참새 방앗간인양 이곳을 빼먹으면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들어 꼭 들리게 되는 곳이다. 호떡이나 떡볶이를 파는 가판 형태의 분식점도 입 소문을 탄 몇 군데는 손님도 많긴 하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장터 음식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여기서 군것질 거리를 사서 먹이고 어른들은 장터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가는 모습을 가끔씩 볼 수 있다.
장터 식당은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나누어 진다. 시장 한편의 점포에 길게 자리잡은 식당들과 해물이나 야채를 파는 가판 근처에 좌판 형태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들이다.
점포에 자리잡은 식당들은 우선 메뉴가 많고 반찬도 많다. 별도의 주방이 있어 국밥은 물론 육개장부터 물회, 볶음, 조림, 구이에다, 요즈음에는 방송을 통해 새로 알려지면서 인기가 있는 보말칼국수까지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며 여기에 6~7가지 이상의 맛깔스러운 반찬이 제공된다. 좌석의 편안함과 어린이에게도 부담 없는 메뉴가 많아 가족 단위 고객이 많고 점심 시간에는 그만큼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맛도 있고 가격도 저렴해서 장날과 관계 없이 일년 내내 장사를 하는 식당도 있고 식사를 위해 장터를 찾는 단골도 많다. 장날을 제외하고 문을 닫는 식당들은 상인들처럼 다른 오일장을 옮겨 다니며 장사를 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좌판의 식당들은 가운데 작은 주방을 중심으로 주변에 빙 둘러 고객이 앉아 식사를 하는 구조다. 주방 시설의 열악함 때문에 메뉴는 국밥이나 국수 정도이고 찬이라 해봐야 김치나 깍두기가 전부이다. 갓 쪄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순대와 머릿고기 등이 스테인리스 대야에 수북하게 쌓여 있고 세월의 내공을 느끼게 되는 육수 통에는 돼지 뼈가 부글부글 끓어 올라 기다리는 동안에 구수한 내음이 주변에 계속 맴돌게 된다. 메뉴가 많지 않아 주문 후 바로 음식이 제공되어 자리의 불편함은 잊게 되고 가끔은 합석도 하게 된다. 지난 번에는 우연히 동네 배드민턴 회장님 부부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 옆 자리에도 오랜만에 만났는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토박이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흥겨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갓 썬 막창 순대에 막걸리까지 한 잔 걸치는 순간 장터 식당의 정겨운 분위기에 흠뻑 빠지게 된다.
장터의 대부분 식당에서 판매되는 메뉴가 순대국밥과 돗괴기(돼지고기의 제주도 방언)국수인데 순대국밥은 여러 지역에서 보편화 된데 비해 고기국수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이젠 도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음식이 됐다.
화산섬으로 검은 현무암이 많은 제주도는 구멍이 많아 배수가 용이하여 물을 가두어 놓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논 농사보다는 보리와 밀과 같은 밭 농사가 발달하여 보리나 국수가 주식으로 사용됐다. 돼지 역시 제주도에서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가축인데 제사나 혼례, 상례 때 마다 돼지를 사용하여 의식을 치르고 돼지고기를 이용하여 다양한 음식을 조리해 먹었다고 한다. 마을의 경조사나 축제가 있으면 손님들에게 살코기 수육인 돔베(도마의 제주도 방언) 고기를 대접하는 것이 풍습이 됐으며 이렇게 남은 부속 고기나 뼈를 우려낸 육수에 중면을 삶아 말아먹은 것이 고기국수의 유래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제주도의 고기국수가 인기가 있는 것은 고기 특유의 잡내가 없다는 것인데 제주 특산물인 흑돼지의 고기와 뼈를 오랫동안 우려낸 국물이 사골 육수처럼 영양가가 높고 담백하여 면을 말게 되면 깔끔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사실 고기국수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몇 십 년 밖에 되지 않다고 한다. 해방 이후 건면이 생산되고 1970년대 이후에 육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최근의 제주도 이주 열풍과 함께 고소하고 담백한 고기국수가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 같다.
고기국수와 순대국밥 모두 음식 가격은 점포 식당이나 좌판 식당이나 차이가 없이 모두 저렴하다. 좌판 식당의 경우 찬은 적으나 고기의 양이 푸짐한 편이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식당을 고르면 될 것 같다.
오일장에는 다른 재래시장과 달리 횟집이나 떡집, 감귤 음료나 귤 하루방 등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없었다. 주말이면 서귀포 올래시장은 회를 포장해 가려는 사람, 오메기떡을 사려는 사람, 감귤 과자나 음료를 사려는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귀포 오일장 내에서도 얼마 전 트멍(틈새의 제주도 방언) 주말 장터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이주민들이 판매하는 쌀국수, 백록담 물을 이용해 만든 눈꽃 빙수, 감귤 정과, 백련초 소다, 감귤 크림 말빵 등 일상 속에서 맛 보기 어려운 제주만의 독특한 음식을 판매하여 도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끌고 있다.
향토 오일 시장의 음식 메뉴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발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시도와 노력은 너무나 보기 좋다. 더불어 장터에 나온 사람들이 뜨끈한 국물에 밥이나 국수를 말아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던 소박한 향토 음식 한 그릇으로 단백하고 고소한 그 옛날 장터의 정취를 함께 즐길 수 있어 더욱 좋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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