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6일 정교분리 원칙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의 ‘성지’ 인 이세(伊勢)신궁을 소개하는 것으로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개막했다. 아베 정부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도록 한 헌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전통과 자연을 내세웠지만 종교적 색채를 지울 수 없었다. 서방 정상들에게 이국적인 경험을 선사하고 일본 내에선 우익적 가치를 잔뜩 강조하는 다목적 포석이 분명해 보였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이세신궁 내궁(內宮) 입구에 있는 다리인 ‘우지바시’(宇治橋) 앞에 일찌감치 도착해 시차를 두고 G7 정상을 한 명씩 영접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도착할 때마다 일장기와 G7깃발을 든 어린이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아베 총리와 인사를 마친 각국 정상은 일본 전통복장을 한 신사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우지바시를 건너 이세신궁으로 들어갔다.
아베 총리는 가장 늦게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대화하며 내궁에 입장한 뒤 정상들과 기념식수를 했다. 익숙하지 않은 서구 정상들이어서 그런지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일본 국회의원이 신관의 안내를 받아 집단 참배하러 가는 장면과 흡사한 장면이 연출됐다.
각국 정상이 1시간가량 머문 이세신궁은 일본 왕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제사 지내는 신사다. 야스쿠니 신사처럼 A급 전범이 합사된 곳은 아니지만, 과거 제정일치와 국체 원리주의의 총본산 역할을 하던 종교시설이다. 일본 정부측은 “이세신궁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전통의 풍부함을 보여주는 장소”라며 “정상들이 일본의 자연이나 전통을 느끼면 좋겠다는 취지”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정상들이 고개를 숙이고 박수를 친 뒤 다시 고개를 숙이는 신도(神道)방식으로 참배하지는 않았지만 일본내 우익세력은 일본문화를 잘 소개했다며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세시마=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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