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 한마리에서 나오는 성게알 고작 15g
하루 물 속에서 400개 이상 캐내야
제주서도 위미 지귀도 성게 특히 알아줘
돌고래의 휘파람 소리처럼 “휘이익”하는 해녀들의 거친 숨비소리(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가 초여름 서귀포 해안 마을에 울려 퍼지면 어느덧 제주도가 성게 철로 접어들었음을 알게 된다. 마을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지난 봄 한창이었던 소라 잡이는 5월 말로 대부분 금채기로 들어갔으며 잠시간의 휴식 기간을 보낸 뒤 6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는 본격적인 성게 잡이가 시작된다.
야행성 동물이라 서귀포 밤바다의 폭군으로 알려진 성게는 낮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바위 틈에 끼여 있다 밤이 되면 슬금슬금 기여 나와 미역, 톳, 모자반 등 해조류는 물론이고 전복, 돌 문어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바닷속의 해조류가 사라지는 백화 현상의 주범으로 지목 받고 있다.
밤송이 조개라고도 불리는 성게는 전세계 대략 800~900여종이 서식하는데 서귀포 바다에서는 6~7월이 산란기인 보라 성게와 가을 성게로 ‘솜’이라고 불리는 말똥 성게가 주종을 이룬다. 이들 성게는 배를 갈랐을 때 나오는 황색의 생식선(일반적으로 불리는 성게 알은 생식선으로, 자웅이체인 성게는 암컷은 황갈색, 수컷은 황백색을 띠고 있다)은 특유의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뛰어나 서귀포에서는 별미 음식으로 손님께 대접했다고 한다.
열대 해안에서 발견되는 성게 중에는 가시에 강한 독을 품고 있는 품종도 있지만, 서귀포 연안에서 잡히는 성게에는 독성이 없다고 한다. 다만 성게 가시는 낚시 바늘 같은 미늘 구조라 한번 찔리면 심한 통증으로 며칠은 고생해야 한다. 성게의 몸에는 가시 이외에도 ‘차극’ 이라고 불리는 막대 모양의 관이 튀어 나와 있다. 미생물이 가시와 가시 사이로 침투하는 역할을 한다. 각각의 성게 가시에는 근육이 있기 때문에 작은 미생물이 가시를 막아 버리면 움직일 수가 없어 반드시 필요하다. 성게의 가시가 부러져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가시가 재생되는 것도 불가사리처럼 조직을 재생할 수 있는 극피 동물의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제주도 해안 마을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성게 잡이는 성산포에서 이미 지난 5월부터 작업이 시작됐으며 5월말 신흥리를 지나 6월 중순부터는 태흥리와 위미리도 작업을 재개한다. 대부분 마을 어촌계의 주도로 작업을 진행하는데, 비교적 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 태흥 2리의 경우 마흔 분 정도의 해녀가 작업을 하는 45일 간 약 1,500 ㎏의 성게알을 채취한다. 파도가 거세 물질을 할 수 없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성게 잡이가 이루어지는데 아침에 3~4시간 정도의 물질을 한 뒤 육지로 돌아와 2~3시간 성게를 까는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해녀들의 물질 채비는 전문 잠수부의 장비와는 사뭇 다르다. 태왁, 망사리, 골갱이 등이 필수적인 채비다. 태왁은 제주말로 “물에 뜬 바가지”라는 뜻인데 잘 여문 박의 씨를 파내고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구멍을 막아 물질 도중에 바다에 띄어 놓고 잠시 쉴 때 사용한다. 여기에 망사리(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그물망)를 매달아 놓으면 해녀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 역할도 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 스티로폴에 천을 입혀 만든 것이 나오면서 예전의 태왁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골갱이는 해산물 채취용으로 만든 일종의 호미인데 농사용 골갱이에 비해 길이는 전체적으로 길고 날의 길이는 짧아 거친 조류를 피해 암초에 박혀 있는 성게나 뿔소라 채취에 편리하게 변형되어 사용한다.
잠수를 위해 허리에 3~4㎏의 납을 달고 작업을 하게 되는데 산소 탱크 없이 물속에서 1분 이상의 숨을 참아가며 해산물을 채취한다는 것은 고령의 해녀들에겐 무척 힘겨운 일이다. 물 밖으로 나와 길게 내뿜는 숨비소리에는 삶의 애절함이 그대로 숨어 있는 듯 하다. 잠시 쉬었다 물속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크게 한번 숨비소리를 내고 바로 내려가는 해녀들도 있다. 제주도 성게의 특성이 바위틈에 가시를 끼워서 서식하기 때문에 캐내기가 어려서 다른 해산물에 비해 수고가 더 든다고 하신다. 이렇게 쉬지 않고 골갱이로 성게를 모아 망사리에 담기를 3~4시간 반복하면 성게 잡이의 절반은 끝나게 된다.
채취한 성게 한 마리를 반으로 잘라 내장을 버리고 성게알을 긁어내면 대략 15g 미만의 성게 알을 모을 수 있다. 상군(경험이 많은 해녀)의 경우, 하루에 5㎏의 성게 알을 얻으려면 적어도 400개 이상의 성게를 물속에서 짊어지고 나와야 한다. 성게를 까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도와줄 식구가 많을수록 작업이 빨리 끝날 수 있지만 육지나 도시로 자녀를 보낸 해녀들은 먼저 작업을 마친 해녀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물질에 참여한 해녀들은 같은 시간에 하루 일과를 마칠 수 있다.
서귀포 동부 해안에서는 보목과 위미에서 씨알이 좋은 성게가 많이 나온다. 특히, 지귀도 성게가 맛과 향이 좋기로 유명하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촬영지에서 약 4㎞거리의 먼발치로 보이는 무인도인 지귀도는 ‘직구섬’또는 ‘지꾸섬’으로 불리는데 서귀포의 다른 섬과는 달리 침강 해안으로 이루어져 수심이 얕고 해조류, 패류, 갑각류 등 성게의 먹이가 풍성하여 알이 차고 듬직하다. 제주도의 많은 해안에서는 해녀들이 멍텅구리(알이 없는 성게)를 먹이가 많은 장소로 옮겨 놓아 키우는 작업(해녀들은 이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함)을 하는데 비해 지귀도 만큼은 이런 수고 없이 15분만 배를 타고 나가면 성게 밭에 도착하게 된다. 대부분의 마을이 어촌계를 중심으로 성게알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반면에 지귀도 성게를 취급하는 위미 1리에서는 해녀들에게 직구매가 가능하다. 가격이 여타 지역에 비해 1만원 정도 비싸지만 품질만큼은 우수하다.
요즈음 제주도의 많은 식당에서는 제주 산보다 통영 산 성게의 사용량이 월등하게 많다. 해녀 성게에 머구리 성게(잠수부가 깊은 바다에서 채취한 성게)까지 더해져 생산량이 많다 보니 가격 경쟁력에서 두 배 가까운 우위를 점하고 있어 많은 식당의 주인들이 통영 산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래식 채비의 열악한 조건으로 거대한 자연에 맞서 제주 성게의 진한 바다 향을 전해주려는 해녀들의 고된 노력이 서귀포의 특별한 맛을 지켜 주는 듯 하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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