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금 실질이자 年1% 못미쳐
시중 부동자금 먹잇감 찾아 이동
아파트 분양권 빌딩, 경매입찰 등
너나없이 부동산 자산에 눈독
공모주, 헤지펀드도 뭉칫돈 몰려
일각선 과열 양상 우려 목소리
#. “입찰자 94명 앞으로 나와주세요.” 지난달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경매법정엔 초소형 아파트(경기 고양시 덕양구 ‘소만마을’ 전용면적 45.48㎡) 입찰에 국내 올해 아파트 경매 기준 최다 응찰자인 94명이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는 결국 감정가(1억5,000만원)보다 2,899만원이나 높은 1억7,899만원(낙찰가율 119%)에 J씨에게 낙찰됐다. 한 경매업체 관계자는 “통상 입찰자 10명 이상에 감정가의 80%를 넘기면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요즘엔 연 3~5%의 임대수익을 노린 일반 투자자들까지 소형 아파트 경매 시장에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 지난 1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영종하늘도시에서 공급한 점포 겸용 단독주택용지 177 필지에는 6만4,350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신청자마다 1,000만원의 보증금을 납부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6,435억원의 시중 자금이 몰린 셈이다. 이 가운데 입지가 좋은 필지의 경쟁률은 9,204대 1에 달했고 청약 폭주에 LH 전산시스템이 일시 마비되기도 했다.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은행 정기예금 실질이자가 연 1%에도 못 미치는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1,000조원에 육박하는 시중 부동자금이 먹잇감을 찾아 수시로 이동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권은 물론 토지, 소형 상가 빌딩, 경매 입찰 등 부동산 자산마다 시중 여유자금이 넘쳐나고 공모주식, 헤지펀드 등 금융 자산에도 개인 투자자들의 쌈짓돈이 몰리는 분위기다.
19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단기 부동자금 규모는 945조2,215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달 들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부동자금은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이런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엔 역세권 인근에 위치한 30억~50억원 수준의 4층 미만 소형 상가 빌딩(꼬마빌딩)에 대한 투자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안민석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꼬마빌딩은 연 4%대 수익률만 보장 돼도 곧장 팔린다”며 “서울 강남ㆍ신사ㆍ청담동 일대 임대료가 계속 오르는 곳엔 기존 고액 자산가에 더해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1955~63년생)도 이 쪽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점포겸용 단독주택 용지(이하 상가주택)에 대한 분양 열기도 뜨겁다. 상가주택 용지는 상업시설(1층)과 주택(2~3층)을 동시에 지을 수 있는 땅이다. 토지를 분양 받아 3층에 실거주하면서 2층 주택은 전세로 돌려 건축비를 융통하고, 1층 상가를 통해 연 3~5% 수준의 임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통상 토지ㆍ건축비가 10억원을 넘지 않아 재취업이 어려운 50~60대 퇴직자는 물론 40~50대 직장인에게도 인기다.
특히 최근엔 현행 규정상 불법이지만 토지 당첨 뒤 분양권에 수천만원의 웃돈을 붙여 팔 목적으로 청약에 나서는 사례도 적지 않아 ‘1,000만원(청약 보증금) 로또’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다. 실제 올해 LH가 공급한 상가주택 용지는 대부분 수백 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이런 현상은 다름 아닌 초저금리 장기화 때문이다. 고준석 신한은행 PWM 프리빌리지 서울센터장은 “최근 기준금리 인하 전(1.5%)나 인하 후(1.25%) 금리 차이는 크지 않지만 심리적인 충격에선 얘기가 다르다”며 “금리가 사상 최저까지 떨어지자 ‘이제는 정말 투자를 해야 하는 시점이구나’라는 생각에 고객들의 문의 전화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3개 기업 공모주에 7조원 가까이 청약
수익에 목마른 개인 투자자들은 과거 소위 ‘꾼(전문 투자자)’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경매 시장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투자 대상은 85㎡ 이하 소형 아파트, 연립 다세대 주택, 상가, 오피스텔 등이다. 모두 투자 규모가 1억~5억원으로 크지 않은 데다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입해 월세로 임대 수익을 받을 수 있는 자산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평균 경매 낙찰가율은 71.4%로 2013년 67.8%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금융 쪽에선 예ㆍ적금을 떠난 투자자들이 증시 상장을 앞둔 공모주에 수조원대의 뭉칫돈을 몰아 넣고 있다. 지난 16일 동시 마감한 녹십자랩셀(2조9,590억원), 에스티팜(3조2,304억원), 해성디에스(7,603억원) 등 3개 기업의 공모주 청약엔 무려 6조9,497억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올해 상반기 재상장된 해태제과의 지난 17일 기준 공모가(1만5,100원) 대비 수익률이 87.08%에 달할 만큼 상대적으로 공모주 투자 수익률이 양호했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 등락에 관계 없이 4~5%의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도 자산가들 사이에선 인기다. 실제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에선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출시한 한국형 헤지펀드 상품을 공지한 당일 5명의 할당인원을 모두 채우며 완판됐다. 이 지점 최철식 수석 웰스매니저는 “개인당 투자금액은 10억~30억원에 달했지만 인원 제한 때문에 가입 못한 자산가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에선 이런 과열 양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강남 재건축 등 일부 지역의 부동산 과열 현상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박합수 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팀장은 “꼬마빌딩 시세만 봐도 일부 지역에서는 2008년보다 두 배 가까이 뛰었는데 과연 수익을 낼 지 의문”이라며 “강남 재건축, 수익형 상가 등 기존 투자처의 자산가치가 너무 올라 지금 상황에서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그림 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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