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단이 제31회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입성했다. 리우 올림픽은 지구 남반구에서 열리는 세 번째 올림픽이자, 남미대륙에서 개최하는 최초의 올림픽으로 상징성이 높다. 하지만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와 노상 강도가 활보하는 취약한 치안환경 등으로 개막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한국선수단의 이번 대회 목표는 ‘10-10’. 금메달 10개로 하계올림픽 4회 연속 종합 10위 이내에 든다는 각오다.
한국인에게 올림픽 하면 남다른 향수를 자극하는 장면이 있다. 그 중 일제 식민지하 손기정의 금메달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손기정은 우승 직후 서울의 지인에게 보낸 엽서에 ‘슬푸다(슬프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외마디 비명 같은 나라 잃은 설움을 이 보다 더 진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앞서 그 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생모리츠 동계올림픽과 7월 런던 하계올림픽에 코리아의 이름으로 출전한 것도 기적의 드라마다. 이어 광복 이후 첫 금메달을 따낸 몬트리올 대회 양정모의 포효도 눈에 선하다. 때는 1976년 8월1일 일요일 오전 9시27분. 지금부터 꼭 40년전의 쾌거다.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의 모리시다를 따돌리고 마라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던 모습은 지금 다시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 늘 그렇듯 올림픽은 국위선양의 최고의 무대였다. 그만큼 국민적인 관심과 자긍심이 높았고, 성과에 대한 보상도 컸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이 혁신의 경연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올림픽이 단순히 메달을 다투는 무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근대올림픽 122년 내내 올림픽은 끊임없이 변화의 몸부림을 쳐왔다. 대표적으로 육상 100m 경기때 잔뜩 웅크린듯한 스타트 기법, 이른바 ‘크라우칭 스타트’의 탄생이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 100m 결선 당시 사진을 보면 혼자서 이 자세를 취한 선수가 토머스 버크다. 버크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스타트 기법으로 100m 초대 챔피언에 이름을 올렸다. 육상과 함께 올림픽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수영에서도 기이한 역영법이 등장했다. 16세 고교생 아돌프 키예프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배영 100m에서 ‘플립턴’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플립턴은 손으로 터치하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턴 지점을 앞두고 몸을 180도 뒤집어서 발로 터치해 가속도를 살리는 방식을 말한다. 플립턴의 개발자는 1932년 미국 수구대표팀으로 LA올림픽 동메달을 합작했던 텍스 로버트슨. 그는 자신의 수제자 키예프에게 플립턴을 전수해 수영의 역사를 통째로 바꿔놓았다. 로버트슨과 키예프는 올림픽 개막 1년전에 이미 플립턴을 선보여 배영 100야드(91.44m) 부문에서 59초8로 사상 첫 1분 벽을 깨기도 했다.
또 하나는 높이뛰기에서 나왔다. 무대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미국의 딕 포스베리가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포즈로 바를 넘고, 시상대 맨 위에 오르자 전세계가 경악했다. 얼굴이 지면을 향하던 가위뛰기 대신 얼굴은 하늘을 향하고 몸을 눕혀서 등으로 바를 넘은 것이다.
이 방식은 배면뛰기 혹은 그의 이름을 따 포스베리 플롭으로 명명됐다. 올림픽 무대는 아니지만 혁신과 인간한계에 대한 도전을 이야기 할 때 1마일 4분벽 돌파도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옥스퍼드대 의대생 로저 베니스터는 25세이던 1954년 5월6일 1마일(1,609m)을 3분59초4에 골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간체력의 한계라고 여겨지던 1마일 4분벽을 부숴버린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베니스터가 4분 벽을 허문 10여일 뒤 베니스터를 뛰어넘는 신기록이 나왔고, 한달 후에는 10여명이 3분대에 발을 들여놓았다. 닷새 앞으로 다가온 리우 올림픽에서도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어떤 혁신의 드라마가 쓰여질지 궁금하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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