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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회보장과 가족 제도의 지속 가능성

입력
2016.09.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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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고향을 찾고, 연휴 동안 언론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명절의 풍경과 가족의 일상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족’이라는 제도가 그렇게 견고하지만은 않으며 이미 균열하기 시작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사회보장 체제는 아직 가족 제도의 버팀목의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다.

혈연관계로서의 성격을 논외로 한다면, 한국에서 가족은 대다수 사람에게 여전히 중요한 복지 공급원이다. 가족에 관한 많은 연구는 한국 가족의 도구적 성격 또는 공리주의적 가족주의에 주목한다. 식민지, 미군정,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국가는 공식적인 권위를 확보하지 못했고 공동체들은 와해하였다. 이 과정에서 거의 유일하게 가족 시스템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 구조적인 사회ㆍ경제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인은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점을 이어가면, 가족 간의 접촉 빈도는 그들의 사회ㆍ경제적 지위와 연관된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실제 조사 결과도 한국에서는 오직 부모의 소득만이 자녀와의 접촉 빈도를 높이는 요소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부모의 소득이 자녀와의 접촉 빈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주요 선진국과 다른 모습이다(정재기, ‘한국의 가족 및 친족간의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의 양상’, 한국인구학 제30권 제3호).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 OECD 평균(11%)을 크게 웃도는 49.6%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은 적어도 빈곤층 혹은 취약계층에서는 위태로운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제도적으로 노인 가구의 소득 대부분을 자녀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의 공공부조 제도는 가족의 부양 능력이 소진된 후에야 작동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가난한 자녀에게 가난한 부모를 만나거나 함께 산다는 것은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빈곤과 사회보장으로부터의 배제가 가족의 해체를 가속하고 가난한 노인을 더 외롭게 만들곤 한다. 노인 20명 중 1명이 최근 1년 동안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는 그 증거다. 이런 상황은 조손(祖孫) 가정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 경우에는 단지 노인의 빈곤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거주하는 손자ㆍ녀의 건강, 교육 및 가치관의 정립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 빈곤층이다. 그들은 스스로 일해서 소득을 얻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 상당수는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연금 미가입 근로 빈곤층은 은퇴 이후에는 노인 빈곤층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해당 노인들의 생계유지가 그들의 가족(대부분은 그 자녀를 의미한다)의 부담이나 국가의 재정적 부담(공공부조의 재정 지출)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아가 그들 가족마저 근로 빈곤층 또는 취약계층에 속할 경우, 노인 빈곤의 문제는 한국 사회가 전통으로 여겨온 가족 제도의 붕괴로 연결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점에 비춰 볼 때, 사회보장 제도의 개혁은 단지 복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필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책 입안자들을 맞이하는 고향은 여전히 풍요롭고, 그 가족 구성원의 연대는 아직 공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조조정 정책과 세계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의 추석 연휴는 그렇지 않다. 공직자들이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그들의 현실에 눈감고 사회보장 제도의 개혁을 계속 미루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추석 연휴의 평화스러운 풍경마저 곧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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