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방송 출연해 전문가 되고, 타이틀로 유료회원 모집”
회비 따라 등급… VVIP회원 주식 팔 때 무료회원에 매입 권유
피해 확산될 때야 공론화… 선제적인 조사ㆍ조치 있어야
‘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진 이희진(구속) 미라클홀딩스 대표의 사기 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비상장주식 거래 등으로 수천억원을 벌었다고 주장한 그는 대표적인 ‘흙수저’에서 ‘주식 전문가’로 변신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각종 주식방송에 출연해 전문가로 포장하고, 유료회원을 모집해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의 주식을 소개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의 사기 행각은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겠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수법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씨는 2014년 2월 미라클인베스트먼트라는 유사투자자문업을 시작으로 그간 한경와우TV, 토마토주식방송 등에서 자칭 주식전문가로 활약해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본인 소유라고 주장하는 고가의 차량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건물 실내 수영장에서의 인증샷 등을 통해 본인이 주식거래를 통해 수천억대 부를 축적한 사람이라고 포장했다. 케이블방송에 출연해서는 한 해 10억원이 넘는 돈을 번다는 래퍼 ‘도끼’를 “(나와 비교하면)불우 이웃”이라며 본인의 재력이 남다름을 과시했다. “불과 2, 3년전까지만 해도 경기 안양의 월세방을 전전했고,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했다”는 소문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가 과시한 부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가 쌓은 부의 실체는 사기를 통한 것으로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14일 금융감독원과 검찰 등에 따르면 이씨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해 무인가 금융투자업 영위, 부당거래금지 행위, 유사수신 행위 등 갖가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주식투자 사이트 등을 통해 자신이 실제 소유하고 있는 P2P 업체인 레인핀테크에 투자하라며 “이 회사는 부동산, 주식, 에너지업체 등 다양하게 투자하고 있는 성장 가능성이 굉장히 큰 회사”고 설명했다. 그를 주식 전문가로 철썩 같이 믿었던 투자자들은 220억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에 대한 투자는 “원금을 전액 보장한다”고 현혹한 것이 컸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씨가 2016년 4월 부산에서 강연에서도, 여러 투자자들과의 SNS 대화에서도 레인핀테크에 대한 투자는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를 받는다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씨는 유사수신업체를 차려 헐값에 사들인 비상장주식을 “앞으로 주가상승이 확실시되고 무조건 사야 한다”며 잠재력 있는 주식으로 둔갑시켜 회원들에게 매각한 혐의도 받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등 싼값에 사들인 비상장주식을 “상장 시 10배 이상 상승할 유망 주식”이라고 속이고 자신의 동생이 운영하는 투자회사를 통해 팔아 치워 100억원대의 부당 이익을 거두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기 행각으로 재산을 불리는 동안 피해자도 늘어 ‘피해자 모임’ 회원만도 1,500여명에 달한다.
문제는 이씨와 같이 케이블TV의 증권방송과 온라인 주식방송 등을 통해 유명해진 자칭 주식 전문가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제2, 제3의 이희진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런 유사수신업자들에게 속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이들이 전문가로 떠오르는 과정과 온라인 투자방송 유료회원을 모집하며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각종 방송에서 전문가가 되는 과정에서 상당수는 비용을 지불하고 방송시간을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쇼핑에서 회사의 물건을 팔기 위해 방송시간을 사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케이블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자신이 주식ㆍ증권 전문가임을 강조한다”며 “이후 유료사이트 등에서 방송 출연 사실을 홍보하고 회원들을 모집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귀띔했다. 돈을 주고 산 전문가 타이틀은 유료사이트 회비를 높이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유료사이트는 회원을 등급별로 구분해 운영하는 것이 보통이다. 돈을 많이 내는 유료회원에게 특정 종목을 우선 추천한 뒤 주가에 변동이 있으면 무료회원에게 추천해 유료회원의 수익을 높이거나 손실을 줄이는 식이다. 이씨가 운영한 유사자문사이트의 회비도 적게는 월 40만원에서 3개월 220만원, 평생회원 2,000만원 등 다양한 등급의 회원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30년 가까이 금융투자업계에 종사한 한 자산운용회사 대표는 “대략 회비가 월 100만~300만원 이상을 내는 회원이 VVIP, 월 회비 50만~100만원이 VIP, 3만~50만원이 일반회원, 그리고 무료회원으로 구성된다”며 “10명 안팎의 VVIP부터 특정 주식을 소개하고 이후 등급별로 순차적으로 알려주는 식인데, 무료회원이 그 주식을 사는 시점은 이익이나 손실을 본 VVIP가 주식을 팔 때쯤”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이다 보니 회사의 실적과 관계 없이 주식이 소개되고 작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각종 주식 게시판에 주식을 소개해주고 대응 방안을 알려준다는 의미의 ‘리딩해드립니다’는 글을 남겨 VVIP의 퇴로를 뚫어줄 무료회원들을 모집한다.
피해자가 발생한 뒤에야 이희진씨 등이 벌인 사기를 적발하는 것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조치와 법적 처분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투자시장에서 유사수신은 다단계, 돌려막기 방식으로 피해가 확산된 후에야 공론화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규모 사기사건으로 불린 조희팔 사기사건이 대표적이다. 조희팔 사건은 2004년 건강보조기구 대여업 등으로 고수익을 낸다며 투자자 7만여명을 상대로 5조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 모았지만, 돌려막기 방식이 지속돼 피해가 확산된 2008년에서야 비로소 사기 신고가 접수됐다.
유사수신행위 규제법상 법적 근거가 없어 수사나 재판이 진행중임에도 불법적인 자금모집을 중단시키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3만명의 투자자로부터 7,000억원을 모집한 유사수신업체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사건에서, 이 회사 대표 이철씨는 작년 11월 구속재판을 받던 중 보석으로 풀려난 올해 4월 전후로도 불법자금모집을 벌여 추가 투자자 피해를 발생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갈수록 진화하는 투자 사기에 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피해가 확산될 우려가 크다”며 “금융당국에 즉각적인 조사권 부여 및 영업행위 중지 등 행정제재 등 다양한 적발책과 규제책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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