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허점투성이 진단서”
일부 위원들 여전히 반감
특위 구성 관련 규정도 전무
성급히 결론 내려 혼란 자초
유족들 “사망진단서 수정” 요청
‘작성 지침을 위반했지만 결과는 뒤집을 수 없다’는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에 대한 서울대병원의 반쪽짜리 보고서를 놓고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재조사를 진행한 병원 특별조사위원회(특위) 내부에서조차 공방이 계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성급한 결론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4일 서울대병원과 의료계에 따르면 특위 논의는 예상대로 백씨 주치의인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가 사망진단서에 그의 사망 종류를 ‘병사’로 기재한 경위를 밝히는 데 집중됐다. 백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는데도 직접사인을 심폐기능정지로 판단한 근거를 입증하기 위한 자리였다. 결론적으로 특위는 전날 백씨 사망진단서가 대한의사협회의 진단서 작성 지침을 위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진단서 수정은 담당의의 고유 권한’이라며 기존 내용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특위 내부에서도 상당한 논쟁을 일으킨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특위위원장인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사인은 외인사로 기재하는 것이 맞다”며 내부 불협화음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이 교수는 이날도 “기자회견 후 위원 중 한 분이 따로 연락해 ‘자신의 의견은 다르다’고 말했다”며 공식 입장에 대한 일부 특위 위원들의 반감을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특위위원도 “기자회견에서는 사망진단서가 정교해 외압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누가 보더라도 허점투성이 진단서”라며 “차라리 실수를 인정했어야 외압 의혹을 조금이라도 불식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위 성격 자체도 구속력이 없는 임시기구여서 어정쩡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병원 내부적으로 특위 구성과 관련한 규정이 전무해 단일한 판단을 내놓는 의사결정 절차가 마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특위 논의 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이 진단서 오류를 지적하고도 ‘병사’ 결과를 번복하지 않은 백 교수 입장이 최종 보고서에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특위가 만장일치로 의견을 내야 한다거나 보고서에 소수의견을 기재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며 “이틀 만에 특위를 구성하고 결론을 내리다 보니 혼란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측이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백씨 유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사망진단서 수정을 공식 요청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조영선 변호사는 “진단서가 지침을 위반했으나 담당의사 재량으로 고칠 수 없다는 건 학생의 답이 틀렸지만 정답으로 처리한 것과 같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백씨 부인인 박경숙씨 등은 기자회견 후 이은정 서울대병원 행정처장에게 사망진단서 정정 요청 공문을 전달했다.
외압 의혹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박석운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는 “유족들이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진행하는 민사소송에서 경찰은 ‘백씨가 쓰러진 날 서울대병원장에게 긴급 협조를 요청하며 백선하 교수에 수술집도를 맡겼다’는 내용의 문서를 제출했다”며 백 교수를 지목한 근거를 대라고 주장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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