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시민단체 10만명 서명부 전달
“대행직 유지하려면 폐기를” 압박
黃측 “의견수렴 결과 고려” 신중
반대 여론 높고 국정 혼란 우려
보류하거나 1년 연기 방안 유력
강행 선택 땐 ‘黃 정치야심’ 확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 적용 여부를 놓고 갈림길에 서게 됐다. 23일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에 대한 의견을 마감한 교육부는 다음주 초 적용 시기 등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정부가 야권이 강력 반발하는 국정교과서 강행을 택한다면, 사실상 황교안 권한대행의 정치적 의지가 작용한 것이어서 황 대행과 야권 간 정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지난 9일 권한대행 체제 출범 이후 아슬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왔던 황 권한대행과 야권은 국정교과서 적용 결론을 앞두고 그야말로 ‘폭풍 전야’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야3당과 시민단체 등이 만든 국정역사교과서 폐기 대책위원회는 이날 10만1,315명이 서명한 국정교과서 폐기 의견서를 교육부에 전달했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도 국정화 폐기를 수용해야 권한대행 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국민 70~80%가 반대하는 교과서를 강제 채택하려는 것은 대통령 탄핵 마당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면 민주당은 다시 거리를 나설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황 권한대행 측은 “일단 주무부처 소관으로서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황 대행은 전날 김동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회동에서도 국정교과서 폐기 요구에 대해 “내일 의견수렴이 종료되기 때문에 향후 고려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보였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의견수렴 결과를 보고 얘기하자는 수준에서 그쳤다”고 말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가 황 권한대행과 야권의 향후 행보를 가르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전망은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등 대외관계상 정책 변경이 어려운 외교안보 사안과 달리, 국정교과서 문제는 정책 변경이 용이한데다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아 정책 유지가 오히려 교육 현장과 국정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의견 수렴 후 결론을 내기로 한 정부 방침 대로라면 보류 가능성이 높고, 교육부 내에서도 1년 연기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행이 이 같은 여론을 순리대로 따른다면 국회와의 관계에서도 다소 간의 잡음이 나오더라도 순항 궤도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이고, 보수 색채가 짙은 황 권한대행도 국정교과서를 지지해왔다는 점에서 강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황 대행은 지난해 11월 국정화 확정고시에 맞춰 가진 대국민담화에서 “편향된 역사 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학생들이 확실한 정체성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면서 박 대통령과 흡사한 인식을 드러냈다.
황 권한대행이 야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정부와 국회간 협치는 물 건너 가게 된다. 야권은 황 권한대행이 정치적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고 고강도의 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황 대행이 안정적인 국정 관리에 초점을 둔다면 연기를 택할 것“이라며 ”하지만 국정화를 밀어붙인다면 보수 진영의 아이콘으로 등장해 ‘포스트 박근혜’의 대표 주자가 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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