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등 주요 단서 다수 들어있어
교체ㆍ파기 왜 안 했는지 의문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부하 직원이 사용하던 삼성 휴대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15일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특검팀이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를 입증하는데 대한승마협회 회장인 박상진(64) 삼성전자 사장의 휴대폰이 상당히 중요한 증거로 작용했다. 박 사장은 삼성 측이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 딸 정유라(21)씨에게 특혜성 금전 지원을 하는 과정을 주도했는데, 박 사장의 휴대폰에서 이 부회장이 관여한 정황이 다수 확보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와 특검팀은 박 사장의 휴대폰을 확보, 디지털포렌식 기법(컴퓨터나 휴대폰 등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을 활용해 문자메시지와 삼성 임직원 전용 클라우드 서비스 ‘녹스’ 사용 내용 등을 복원했다. 녹스는 기존의 사내 메신저와 인트라넷 기능을 통합해 휴대폰으로 업무 문서 열람, 임직원간 보안 대화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검찰과 특검팀은 박 사장의 휴대폰에서 삼성 측이 정유라씨 지원을 위해 대한승마협회 및 최씨 측과 접촉한 다수의 흔적을 찾아냈고, 이를 이 부회장 등을 압박하는 데 사용했다.
삼성 측에선 박 사장이 휴대폰을 바꾸거나 파기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2월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의혹으로 조준웅 특별검사팀 조사를 받은 이후 미래전략실 등 삼성의 주요 부서에서는 서류로 기안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무실 컴퓨터에도 서류를 저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삼성 압수수색을 하기 전 이를 예상한 미래전략실 측에서 임직원들에게 컴퓨터 하드디스크 포맷과 휴대폰 교체 등을 권고해 고위 관계자 대부분이 휴대폰을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박 사장은 2014년부터 사용한 휴대폰을 지금까지 바꾸거나 파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특검팀 입장에선 결정적 단서를 얻는 셈이 됐지만 박 사장으로선 일종의 ‘스모킹 건’을 제공한 셈이 됐다. 다만, 박 사장의 휴대폰에서 복원된 내용 중에 이재용 부회장과 정유라씨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부분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은 이를 근거로 이 부회장이 빠져 나갈 활로를 찾고 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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