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이던 엑스타 슈퍼챌린지 개막전 결과를 만회하고자 평소 친분이 있던 카레이서 오일기 선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전날 슈퍼레이스 2라운드 캐딜락 6000클래스 경기를 치른 직후 전라남도 영암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돌아오는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도와줄테니 오후 시간에 제일제당레이싱팀으로 찾아오라”고 말했다.
이제 막 아마추어 레이스 한 경기에 참가한 내게 ‘후배’라고 살갑게 칭해주며 기꺼이 시간을 내준 오일기 선수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용인에 있는 제일제당레이싱팀 캠프로 향했다. 5월 15일 오후 3시, 제일제당 레이싱팀과 김의수 감독, 오일기 선수가 막 캠프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있었다.
“일단 인캠부터 보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보여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오일기 선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직 수동이 익숙하지 않아서 변속을 잘 못해, 클러치에서 발을 못 떼…”
프로 카레이서에게 보이기엔 부끄러운 실력이라 영상을 틀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변명부터 튀어나갔다.
“변속이 느린 걸 떠나서, 변속하는 지점이 잘못되어 있네. 이러니까 네가 당황해서 클러치를 밟고 있는 거야. 그럴 수 밖에 없지. 자, 기초부터 설명해줄게”
오일기 선수는 지난 슈퍼챌린지 개막전 예선 주행을 녹화한 영상(인캠)을 예리하게 살펴보며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춰 기초적인 서킷 공략 방법을 설명했다.
1. 이상적인 코너 진입 및 탈출
오일기 선수는 영상을 본 후 가장 먼저 진입속도를 충분히 낮추지 않아 언더스티어를 일으키며 타고 있다고 지적하고, 모든 모터스포츠 이론서에 등장하는 코너 진입과 탈출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카레이서를 한 번쯤 꿈꿔본 사람이라면 모두 들어봤을 코너 공략법, ‘슬로우 인 패스트 아웃’ 말이다. 정말 기초 중의 기초인데도 막상 욕심이 앞서기에 서킷에서 지키기란 쉽지 않다.
코너 진입 시 턴 포인트 전에 강한 제동을 먼저 마치고, 기어를 바꾸고, 그 다음에 스티어링을 감는다. 그리고 클리핑포인트(CP)까지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확 떼어버리면 관성에 의해 차는 다시 조금씩 가속된다. 즉 CP까지 섬세하게 브레이크 답력을 줄여가며 속도를 유지해주어야 한다. 다시 가속할 때는 서서히 가속 페달을 밟는 힘을 늘려가야 한다. 감은 스티어링휠을 푸는 만큼 가속 페달을 더 밟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바퀴가 차체와 일직선을 이룰 때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주며 탈출해야 하는 것.
코너 진입 속도를 높게 가지고 가야 얻는 거리는 15-20m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언더스티어 현상이 발생해 가속 포인트 1m가 늦어지면 연결되는 다음 코너까지 쭉 늦어진다. 1초 욕심 내다 2초를 잃게 되는 거다.
2. 시선 처리의 중요성
사람은 주변시가 넓으니 이걸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콘을 세워두면 콘 앞에서만 본다. 바로 앞의 콘은 주변시로 보고 가고 다음 콘을 찾아야 한다. 운전자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차가 가기 때문. 스핀 할 때 펜스를 보면 펜스에 박는다. 운전자가 보는 데로 습관적으로 턴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에 갈 곳을 봐라.
3. 미래형 시각을 가져라
드라이버의 시각을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나쁜 건 과거형. 이미 지난 실수를 걱정하거나, 지나고 있는 CP를 계속 보는 경우다. 실수 했든 잘 했든 지난 건 잊고 미래(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 코너가 이어지는 연속 코너의 경우, 진입을 실수했다면 두 번째 코너는 세 번째 코너를 잘 탈 수 있는 라인을 만들어주는데 신경 써야 한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탈출이다. 마지막 코너에서 탈출을 잘 해야 한다.
4. 서킷을 연구해라
힌트는 서킷 안에 다 있다. 빠른 차들이 어떻게 가는 지 트랙과 연석에 타이어자국으로 다 남아 있다. 그런데 이게 차로 진입할 때는 안 보인다. 그리고 정면으로만 걸어가도 안 보인다. 차의 운전석이 갔으면 하는 방향으로 서킷을 직접 걸어봐라. 코너를 지나 뒤돌아보면 코너를 차가 어떻게 나와야 하는 지가 보인다. 어디서 어떻게 흘러나와야 할 지를 알 수 있다. 평지라고 생각했는데 각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연석의 높낮이와 형태도 파악할 수 있다. 서킷은 직접 걸어봐야 한다. 분석하면서.
5. ‘가지치기’를 이용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라
드라이버가 조절 할 수 있는 세 가지는 스티어링, 브레이크, 액셀러레이터다. 서킷마다 코너는 다 다르다. 자신만의 포인트를 정해서 조금씩 조절해보며 빠른 길을 찾아가는 거다. 만약 터닝 포인트를 정해서, 40m, 50m, 60m에서 스티어링을 했다. 만약 50m가 제일 괜찮았다. 그럼 여기서 스티어링은 70도, 80도 90도를 해본다. 스티어링, 브레이크, 액셀러레이터의 양과 지점, 이런 것들로 가지를 만들어가면서 맞는 걸 찾아간다.
6. 연석을 제대로 활용해라
연석을 탈 때 차의 반응을 잘 느껴야 한다. 대부분 연석을 탈 때는 한쪽이 들리고 한쪽이 눌리면서 그립이 더 잘나온다. 특히 전륜구동 차는 뒤를 흘려 줘야 앞쪽 그립이 잘 나오기 때문에 연석을 활용하는 것. 연석을 밟는 또 다른 이유는 코너의 곡률을 펴서 가기 위해서다. 그럼 되도록 라인에서 나갈 때 연석을 밟아서 뒤를 좀 ‘날려’줘야 한다. 진입 때 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진입 때 탔다가 떨어지면서 차가 밀리니까 스티어링만 더 감게 되는 역효과가 난다.
7. 정확한 차 폭 파악
공도에서는 사이드 미러까지가 차폭이지만, 서킷에서는 A필러 아래 타이어까지가 차 폭이다. 더 넓게 생각하면 안된다. 그래야 라인을 제대로 그리고 연석을 정확히 쓸 수 있다. 차폭에 대한 감이 없으면 가야할 곳을 못보고 계속 지나고 있는 지점을 쳐다보며 파악하게 된다. 차 폭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8. 엔진 회전수 관리
같은 속도에서 턴하더라도 엔진 회전수(RPM)를 너무 떨어뜨리면 다시 살리기 힘들다. RPM를 유지하면서 라인을 만들어가야한다. 특히 슈퍼챌린지가 열리는 인제 스피디움 서킷은 고저차가 심해 가속이 늦으면 코너 지날 때 차이가 엄청나다.
9. 타이어 그립
언더스티어가 약간 날 때, 타이어가 막 비명을 지르기 시작할 때가 타이어 그립은 가장 좋다. 소리가 커질수록 당연히 그립은 떨어진다. 스티어링 정도가 커서가 아니라 타이어 한계가 와서 소리가 날 때, 이 때 스티어링을 더 돌려버리면 안 일어날 언더스티어를 일으켜서 크게 만드는 셈이다. 코너를 과진입했다면 턴을 미리 하지 말고 더 누르고 더 감속해서 돌려야 한다.
오일기 선수의 설명을 들으며 스스로 잘 타고 있다고 믿고 있던 부분도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속은 느린데 CP 진입은 빨라, CP가 아닌 그 앞쪽을 지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라인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연석도 잘못된 방향으로 타고 있던 것. 서킷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레코드 라인만 기억하고 있던 것뿐이다.
이론적인 이야기를 들은 후, 주행한 영상을 보며 적용하니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며 더욱 이해가 잘 됐다. 몇 가지는 이전에도 틀렸다고 지적을 받았지만 스스로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몰라서 못 고쳤던 부분도 있다. 꽉 막혀있던 부분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분명 기초적인 내용이고 이전에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했지만, 실전에 적용할 만큼 제대로 알고 있진 않았던 탓이다. 또한, 주행 영상을 볼 때는 레코드 라인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시선부터 기어 변속 타이밍 등 다양한 부분에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들려오는 타이어 소리까지.
이제 서킷으로 달려가 배운 것을 되새기며 연습해볼 차례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l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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