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레이스 얘기만 하면 표정이 달라지는 거 알아? 정말 신나 보여. 부럽다”
몇 시간을 이야기 하는 동안, 광대뼈가 솟아 오르도록 활짝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마주앉은 지인이 말했다. 그 순간의 회상만으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흥분해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그런 것.
내게는 남보다 뛰어나지 못하고 가진 게 없어도 비교로 기죽지 않고 진심으로 행복한 순간이 있다. 스파크 경주차를 몰고 인제 스피디움을 달리는 매 순간, 순간이 그렇다. 외워서 알던 지식을 제대로 깨칠 때의 쾌감, 예상이 맞아떨어지며 결과로 나타날 때의 희열, 공부하고 연습한 만큼 줄어드는 랩타임이 이 주는 성취감이란!
# 슈퍼챌린지 3라운드
“예선 기록 2분 17초 7! 잘했어!”
“잘하긴, 한 랩도 제대로 못 달렸어”
다른 선수들과 10초 이상 차이 나던 랩타임이 이제는 꽤 비슷해졌다. 이전 개막전과 2라운드 예선 때만해도 바로 앞에 다른 경주차가 달려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거리는 벌어질 테고, 내 최고 랩타임을 뽑는 데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랩타임 기록이 비슷해지니 예선에서 다른 차와 적절한 간격을 벌리는 게 중요해졌다. 앞차와의 거리를 재며 타이밍을 보다가 예선 시간 20분이 끝나버렸다. 결국 한 번도 제대로 기록을 내기 위한 ‘어택’주행을 못했다. 기록을 더 줄일 수 있었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제 드디어 다른 경주차들 사이에서 달린다. 예선 결과는 23명중 18등.
“결승에서 기록 더 단축해 볼게, 가능할 거 같아”
이번엔 욕심이 좀 났다. 스타트부터 잘 하고 싶었다. 응원하러 그리드워크까지 쫓아나와준 오일기 선수를 잡고 급히 스타트 노하우를 물었다.
“스타트는 어떻게 해야 해?”
“기어 1단에 넣고, 클러치 밟고, 엑셀을 밟으면서 회전수를 올려 놔. 그리고 출발할 때 둘 다 발을 딱 떼. 그럼 일단 클러치 미트 되면서 훅 나갈거야, 그럼 다시 엑셀을 밟아. 엑셀도 뗐다가 차가 움직이면 다시 밟아, 그게 포인트야”
“OK!”
스타트 신호가 들어오는 걸 보며 클러치 페달과 엑셀러레이터를 동시에 밟았다. ‘우우우우웅-‘ 회전수가 5,000rpm까지 올라간다. 빨간불 다섯 개가 켜졌다. ‘이제 5초 전인가…’
“스타트, 고!!”
“뭐?”
빨간 불 다섯 개가 동시에 꺼졌다. 아차, 빨간 불이 점점 늘어나다 한번에 꺼지면 출발인데 이걸 반대로 생각했다! 첫 경기도 아닌데, 왜? 급하게 클러치에서 발을 뗐다. 어라?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엑셀을 급히 밟는다. 맙소사! 기어가 N, 중립이다.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내 옆으로 다섯 대의 차가 지나갔다. 부랴부랴 1단을 넣고 엑셀러레이터를 즈려밟는다. ‘우우웅-’ … 아, 느리다!
‘바로 앞의 차부터 잡자, 분명 나보다 랩타임 3초이상 느린 차다’
내 페이스가 분명 더 빨랐다. 문제는 나와 앞차의 주행 라인이 같다는 거다. 따라가다 앞차를 받을 것 같아 속도를 줄이기 일수. 레코드라인만 죽어라 연습했으니 추월이 될 리가! 분명 앞의 두 대가 보였는데 이제 바로 앞 차와 나만 남았다. 전체 10랩 중 4랩째에서야, 가장 차이가 많이 나던 1번 코너에서 간신히 추월할 수 있었다. 추월은 했지만 앞에 보이는 경주차는 한 대도 없었다. 세 바퀴를 도는 사이 이마 다른 차들은 한참을 앞질러 간 후다.
부랴부랴 2랩을 홀로 달리며 쫓아가니 비로서 앞차가 보였다. 앞차는 더욱 추월이 어려웠다. 무리해서 추월을 시도하다 부딪힐 뻔하길 수 차례. 가까워 질 때 마다 움찔하며 나도 모르게 엑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에서 힘이 빠졌다. 곧 확 벌어지는 앞차와의 거리. 다시 따라잡았다가 또 멀어지고. 중간에 뜬 황기를 보고 속도를 줄였던 것도 문제였다. 그 구간만 조심하라는 의민데 전체 황기인줄 알고 속도를 늦춘 것. 도대체 모터스포츠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규칙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결국 추월은 한 대로 그쳤고, 리타이어한 두 대 덕에 간신히 20등으로 경기를 마쳤다. 예선보다 더 떨어진 등수다. 경기 중 가장 빠른 랩타임 기록인 패스티스트랩은 2분18초대. 기록이 줄기는커녕 더 늘었다.
“파크 퍼미로 아무도 안오더라?”
“너 스타트 실수하는 거 봤다. 내리자마자 짜증 낼 것 같으니 다들 피한거지”
“내가 잘못한 건데 뭘, 다음 경기는 더 잘하겠지”
떨어진 성적도, 레이스 중 어이없던 실수에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까지 신나게 달렸던 기분에 취해 더 달리고만 싶었다. 이번 스타트 실수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왜 추월이 어려웠는지 다음에는 그래서 어떻게 달릴 지. 머릿속엔 온통 다시 달릴 생각뿐이었다. ‘언제 또 연습오지, 언제 또 달리지? 이 부분을 바꾸면 정말 기록이 줄까? 이렇게 하면 다음에는 추월할 수 있을까?’ 마냥 신이 났다. 두근두근 설렜다.
생수 한 병 쭉 들이키고 한 숨 돌리고 있자, 오일기 선수가 결승 인캠 영상을 보자고 한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주행 기억이 생생할 때 듣는 오일기 선수의 어드바이스라니!
“앞차랑 간격이 왜 이렇게 넓어. 여기가 고속도로야? 안전거리 확보해?”
“아니, 앞차가 갑자기 설 수도 있고 부딪힐까 봐…”
“그래가지고 무슨 추월을 하냐. 바짝 붙어서 기회를 봐야지! 그래도 이제 변속이나 코너 들어가는 건 곧잘 하네”
# 세 번의 경기를 마치고
전에는 코너 마다 스티어링 휠을 돌려야 하는 위치와 기어 단수를 외워 따라 했을 뿐, 파워트레인에 대한 이해도 경주차의 움직임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기록을 더 줄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해야 할 지를 몰랐다. 많은 드라이버 선배들의 도움으로 하나씩 문제를 고쳐가고, 더 잘 타기 위해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다른 선수들과 기록이 비슷해질수록 추월과 방어, 그리고 경기 운용 전략도 중요해졌다. 이 자체가 또 새로운 즐거움이자 스프린트 레이스의 묘미다.
처음 아마추어 레이스를 시작할 때의 목표는 ‘아마추어 레이스는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다’고 알리는 거였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솔직히 쉽지 않다.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부터 운전부터 레이스 그 자체를 알아가는 일까지.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즐거움이 있었다. 운전 실력을 겨루는 레이스라고 해서 누군가를 이기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자존심도 구겨보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씩 배워가고 그렇게 성장하는 스스로를 보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이러한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알아가는 즐거움 또한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함께 경쟁하며 달리지만 서로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한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하고 가르쳐주고 도움을 주고 받는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본 사이여도 선뜻 이야기를 나눈다. 좋아하는 일을 함께 즐기고 배우고 가르치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의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일. 이 모든 것들을 아마추어 레이스에 참가하며 배웠다. 수동 운전보다 서킷 주행 기술보다 훨씬 더 값진 일이다.
나는 이렇게 레이스를 즐기고 있다
[영상] 슈퍼챌린지 3라운드 슈퍼스파크 참가 현장 스케치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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