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다시 악취를 풍기고 있다. 이번에는 직원 채용 비리다. 감사원이 5일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 등 조직ㆍ인력운영 실태’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53개 주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한 감사 결과 무려 39개 기관에서 100건의 채용비리가 적발됐다. 석유공사 등 4개 기관의 비리는 현직 기관장 인사조치까지 권고될 정도로 심각했고, 문책(징계) 요구와 인사자료 통보도 각각 10건, 11건에 달했다. 공공기관의 광범위한 채용비리는 수십 만 청년 취업 준비생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크게 해치는 중대 적폐다.
비리의 내용은 개탄을 금하기 어렵다.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은 자신의 과거 직장과 학교 후배들의 1급 계약직 채용을 지시하고 압박했다. 백창현 석탄공사 사장은 2014년 본부장 시절 청년인턴으로 일하던 전 사장의 조카 A씨 등을 임의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으로 편법 채용했다. 석탄공사에서는 전 노조위원장까지 채용비리를 저질렀다. 정용빈 디자인진흥원장은 지인의 딸에 대한 인적성검사 점수 조작을 묵인했고, 우예종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신입ㆍ경력직 공채에서 전형 단계ㆍ분야별 합격인원을 임의로 바꾸어 4명을 부당 합격시켰다.
기관장뿐만 아니다. 감사원은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의 두 비서관 AㆍB씨가 강원랜드 등에 각각 채용된 것도 부당고용으로 봤다. 두 기관은 부당고용을 위해 채용 지원자격 기준까지 변경한 것으로 드러나, 최흥집 강원랜드 전 사장 등이 검찰에 고발됐다. 강원도 강릉이 지역구인 데다, 한때 두 기관을 관할하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당시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권 의원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란 ‘합리적 의심’이 솟구칠 만하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맞물리면서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적폐 청산이 본격화했다는 관측도 있다. 산하 공공기관이 대거 적발된 산업통상자원부는 “부패와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해 비위가 기관에 대해서는 엄정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채용비리에 국한된 감사나 수사, 행정징계 정도로 거창하게 공공기관 적폐 청산을 말하긴 군색하다. 특히 앞으로도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정치권 인사들을 위한 ‘낙하산 인사’가 근절되기 어렵다면 이런 식의 제한적 비리 적발과 징계는 생색내기에 불과할 뿐이다. 정부가 진정 공공기관 적폐 청산을 바란다면, 비록 과거 정부의 정책이라 하더라도 되살려 지금이라도 전반적 공공개혁 정책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강구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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