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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지루? 일단 한번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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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지루? 일단 한번 읽어보라”

입력
2017.12.01 16:4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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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안대회·이종묵 교수

8년 동안 고전 600여편 뽑아

번역 해설한 ‘한국산문선’ 출간

8년간 작업 끝에 600여편의 한국 고전 산문을 집대성해낸 한국 고전학계의 스타 학자 이종묵(왼쪽부터), 안대회, 정민 교수는 고전은 낡고 고루하다는 선입관에 맞서 "일단 한번 읽어보라"고 외친다. 민음사 제공
8년간 작업 끝에 600여편의 한국 고전 산문을 집대성해낸 한국 고전학계의 스타 학자 이종묵(왼쪽부터), 안대회, 정민 교수는 고전은 낡고 고루하다는 선입관에 맞서 "일단 한번 읽어보라"고 외친다. 민음사 제공

“제자가 이혼하겠다니까 퇴계선생이 편지를 보내요. 고루한 성리학자 같지만 그 내용이 ‘나도 살아 보니 다 남자 잘못이더라, 그러니 좀 더 노력하라’는 거예요. 이 내용이 퇴계 문집에서 빠졌는데, 나중에 제자 부인의 요청으로 들어갑니다. 그 편지 덕에 잘 살게 돼서 고마웠나 봐요.”(이종묵 교수)

“허균이 문장에 대해 쓴 글 ‘문설(文說)’은 기가 막혀요. 어떤 글이 좋은 글이고 그런 글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느냐를 설명한 내용인데 글짓기 기교를 넘어선 통찰력이 엿보입니다. 지금도 논술강사들에게 이 얘길 풀어서 설명해 주면 다들 무릎을 탁 칩니다.”(정민 교수)

“정범조의 글은 어떻고요. 청나라와 일본 양쪽의 침략 가능성을 두고 여러 얘기들을 하는데, 잘 읽어 보면 그게 지금 4강 질서 속에서 우리 외교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고민과 겹칩니다. 서구 학자 말고 우리 학자의 이런 시선도 함께 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안대회 교수)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 9권으로 된 ‘한국산문선’을 앞에 둔 한국 고전학계의 스타학자 정민(한양대)·안대회(성균관대)·이종묵(서울대) 교수 3인은 고전을 한번쯤 읽어 보고 평가하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고전이라고만 하면 젊은이들이 무조건 멀리하며 몸서리치는 현실 때문이다.

총 9권으로 구성된 한국산문선
총 9권으로 구성된 한국산문선

“강의시간에 연암 박지원이 죽은 누님을 위해 쓴 묘지명을 읽어 주면 요즘 학생들도 막 울어요. 그런데 정작 그게 고전이라 그러면 가까이 할 생각을 안 해요.” “성호 이익이 죽은 노비를 위해 쓴 제문을 읽어 보세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짠합니다.” “첫사랑 아내가 죽고 10년 뒤에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쓴 정인보 글도 참 애잔한 글입니다.”

‘한국산문선’은 우리 좋은 글을 직접 읽히겠다는 결심 아래 8년의 시간을 들여 고전 600여편을 뽑아 번역, 해설해 둔 책이다. 600여편 글 가운데 절반쯤은 거의 첫 번역이고, 나머지 절반 역시 1960~1970년대의 옛 번역밖에 없던 글들이다. 1~3권은 신라부터 16세기까지 자유분방한 산문을, 4~6권은 성리학적 질서가 본격화되는 선조 때부터 영조 중반 때까지의 치밀한 문장과 사유의 힘을 보여 주는 글들을, 7~9권은 영조 후반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파격적이고 다채로운 스타일의 글들을 가려 실었다.

정 교수는 “가려 뽑고 번역하는 데 매달린 지난 8년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나 우리나라 최고의 산문을, 시간대 순으로, 완전하게 번역해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 산문선을 통해 젊은이들은 고전에 흥미를 갖고, 지식인들은 우리 전통에서 글감을 찾아 글을 쓰고,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은 번역작업 때 정본 삼아 쓴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고도 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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