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당신은 총을 멈출 수 있잖아. 부탁이니 뭔가를 해줘. 당장!”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파클랜드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학살 사건에서 14세 딸 알리사를 잃은 로리 알하데프는 방송 인터뷰에서 울부짖었다. 대낮에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으로 해묵은 총기규제 논쟁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늘 그렇듯 정치권의 외면 속에 묻힐 가능성이 높다.
2018년이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가운데 올해 미국 내 학교에서 총기가 발사된 사건은 총 18건이고, 그 가운데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8건이다. 1월 23일 켄터키주 마셜카운티 고교에서는 15세 학생이 권총으로 2명을 살해하고 18명을 부상 입혔다. 2월 초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반자동 상태였던 권총이 갑자기 발사돼 5명이 부상을 당했다.
총기를 이용한 살인사건이 빈발하고 있지만 총기규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2012년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있었던 대대적인 총기규제 입법 시도는 공화당의 반대와 전미총기협회(NRA) 등의 여론전으로 좌절됐다. 대신 학교에 경찰관을 배치하기 위한 연방정부 차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또 일부 학부모들을 상대로 방탄 책가방 등을 판매하는 ‘학교 안전사업’이 성행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방어대책을 마련한다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의 경우 평소 ‘코드 레드(총 든 사람이 활동 중)’ 상태에 대응한 예비훈련이 철저히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막상 실제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교사 멜리사 팔코우스키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라면서 “우리 정부와 국가(미국)가 이 아이들과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정권은 철저히 논쟁을 회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 이튿날인 15일 오전 트위터를 통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꾸준히 보고를 해야 한다”며 총기사건의 원인을 범인의 정신이상과 주변의 부주의로 돌렸다. 이후 공식 연설은 다소 표현을 절제했지만 총기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우리가 무언가를 바꿨다는 기분이 들기 위한 행동보다는 진정한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사건 발생 20시간이 지난 뒤에야 공식 입장문을 발표,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사건 이후 6시간 만에 입장을 내놓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비교되며 비판을 받고 있다.
다른 공화당 정치인도 비슷했다. 릭 스콧 플로리다주지사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인물이 총기에 접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나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초 대규모 규제 완화를 표방하면서 정신이상 이력 정보를 총기거래 감독 당국과 공유하라는 법을 폐지한 바 있어 빈축을 샀다.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은 비판적인 매체들을 피해 자신들의 ‘홈 그라운드’인 폭스뉴스에만 출연해 인터뷰하면서 “지금은 총기규제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사건을 둘러싼 사실을 명확히 알아야 할 때”라는 신중론을 폈다.
민주당도 총기규제를 정치 쟁점화하기를 껄끄러워하고 있다. 총기규제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들고나왔던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에 패배했고, 민주당 의원 일부도 총기규제에 우호적이지 않다. 그나마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코네티컷주의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만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머피 의원은 “총기에 의한 학살이 계속되는 나라는 미국 말고는 없다”라며 “이는 우연이나 불운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하지 않아서 발생한 결과다”라고 말했다. 사건 발생 후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전한 오바마 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총기규제법을 포함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규제론을 짧게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지난해 10월 스티븐 패덕의 라스베이거스 콘서트장 총기난사로 58명이 숨지고 546명이 부상을 입는 최악의 인명피해 사건이 발생했고, 불과 한 달 뒤인 11월 데빈 패트릭 켈리의 텍사스주 교회 총기난사로 26명이 숨졌지만 의회 내에선 총기규제는커녕 반자동소총을 자동소총처럼 개조하는 효과를 지닌 ‘범프스톡’ 판매 규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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