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이스라엘의 봉쇄에
일반 주민들은 국경 못 넘어
치료 급한 환자도 이송 어려워
하루 2시간만 전기 공급 등
기본적인 생활 어려움 만연
일부는 목숨 걸고 국경서 시위
전체 길이가 42㎞, 가장 넓은 폭은 12.5㎞에 그치는 이 작은 땅 조각은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차로 1시간30분 밖에 안 걸린다. 지중해 연안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가자 지구(Gaza Strip)다.
이 곳의 삶은 ‘갇힘’ 그 자체다. 서쪽으로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으로는 철조망 울타리 위에 가시철사를 두른 ‘보안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북쪽으로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벽이 세워져 있는데, 최근에는 지하로 넘어오는 걸 막기 위해 땅 밑에도 벽을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약 200만 명의 사람들이 가자 지구를 보금자리로 삼고 있다. 가자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 곳을 떠난 적이 없다. 아니 떠날 수 없다. 2007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한 이후 이스라엘이 곧장 봉쇄 정책을 시행하면서 이들은 사실상 고립됐다.
지난해 12월 국경 지대에서 총에 맞아 부상당한 22세 청년 하산은 “가자 지구를 벗어난 건 딱 한 번이었다”며 “내가 8살 때 이집트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주민들의 출국 허가 문턱을 더욱 높여 가는 추세다. 국제인권감시기구와 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가자 지구 밖에서 이스라엘 측의 여행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54명이 사망했다. 모두 당장 치료가 급한 환자들이었다. 지난해 이스라엘이 허가를 내준 의료 목적 여행은 신청 건수의 54%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2008년 이후 세계보건기구가 집계한 기록 중 가장 적은 수치다.
유엔 인도지원조정국에 의하면 지난해 상반기 동안 하루 평균 240명만이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국제기구 및 구호단체 인력들이었다. 일반 주민들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그저 불가능할 뿐이다. 하산은 “다른 인간처럼 이동에 대한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하지만 우리도 인간이다”라고 호소했다.
고립된 가자 지구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2014년 공격으로 인해 죄다 무너져 내린 건물들은 최근 국제 원조로 외형상으로는 재건된 모습을 갖추긴 했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이다.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식량 부족과 치안 불안에 고통 받고 있다. 전기ㆍ식수 부족, 열악한 의료 환경 등은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자 지구의 이동 제한으로 인한 의료 서비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2010년 이 곳에 재건 수술 프로그램을 열었다. 덕분에 타국에서 온 외과와 마취과 의사들이 현지 팔레스타인 간호팀과 협력해 가자 지구에서 실시할 수 없었던 복잡한 수술 또한 가능하게 됐다.
전기 문제는 가자 지구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일상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수개월 동안 가자 지구 주민들은 하루에 단 2~3시간만 전기 공급을 받아왔는데, 이마저도 주로 밤 시간대에 공급되곤 했다. 가자 지구의 주부들은 한밤중에 일어나 음식을 만들고 세탁기를 돌린다고 한다.
아이들도 ‘전기 없는 삶’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가자 지구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의료 코디네이터 아부 아베드는 “전기가 들어오는 두 시간 동안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충전할지, 만화를 볼지, 혹은 냉장고에 주스를 넣어놓을 것인지 고민한다”며 “천진난만한 아이들조차 이런 고민이 자연스러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생후 14개월 된 우사이드는 손에 화상을 입은 채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을 찾았다. 우사이드의 할머니는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 동안 모든 걸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하다 보니 서두를 때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칠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경없는의사회를 찾는 환자 중 35%는 5세 이하고, 60%는 15세 이하다.
가자 지구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이 불안정하고 실업 기간도 길다. 이스라엘 국경 지대에 가서 부당함과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는데, 심각한 부상을 입고 돌아오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 이라고 천명한 데 항의해 많은 청년들이 가자 지구 내 시위에 참여하면서 부상 환자 또한 급증하고 있다. 11월에는 19명이었던 부상 환자가 12월에는 162명으로, 올 1월에는 200명 가까이로 늘어났다. 대부분 하반신 쪽에 총상을 입은 환자들이었다.
우리 환자 중 한 명인 모하메드에 따르면 젊은이들은 이런 폭력이 만연한 가운데서 자라났다. 그는 “폭발성 탄환에 내 다리가 찢겨 벌어진 모습을 봤는데도 기절하지 않았다. 우린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항상 전쟁이 있었고 친구들이 부상당하는 걸 봐왔다”고 말했다.
이런 고난 속에서도 가자 지구에서의 삶은 이어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동 제한 정책으로 인해 가자 지구의 경제발전은 요원한 상태다.
예를 들어 공사 현장에 필요한 자재들은 국경에 막혀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용될 가능성이 있는 약품이나 의료 기구 또한 반입이 막혀 있다.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봉쇄 정책으로 사람들은 힘겨워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가자 지구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한다. 우리 환자 중 한 명은 “여기서 버는 모든 것은 결국엔 잃게 되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분쟁은 이 사람들을 작은 땅덩어리에 가둬놓았고 이들의 삶엔 희망이 거의 없다.
티에리 코펜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