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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김영삼을 대통령으로…김종필의 그때 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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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김영삼을 대통령으로…김종필의 그때 그 장면

입력
2018.06.25 11:09
수정
2018.06.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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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은 3김] 1989년 1월 5공 청산을 위한 야권 공조를 다짐하며 손을 맞잡는 김영삼(왼쪽부터) 김대중 김종필. 한국일보 자료사진
[손잡은 3김] 1989년 1월 5공 청산을 위한 야권 공조를 다짐하며 손을 맞잡는 김영삼(왼쪽부터) 김대중 김종필. 한국일보 자료사진

‘킹메이커’ ‘영원한 2인자’ ‘정치풍운아’ 등으로 불렸던 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고 김영삼(YS)ㆍ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번갈아 손을 잡으며 그들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이바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으로 그때 그 장면을 소개한다.

(관련기사 ☞ 때론 손잡고 때론 등지고… 3김 애증의 반세기

)

#1. YS를 대통령으로

[3당 합당과 “이의 있습니다”] 1990년 1월 22일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전격 회동을 갖고 3당 합당과 함께 민자당 창당을 선언하고 있다(위). 이어 1월 30일 합당 결의를 위해 서울 마포당사에서 열린 민주당 임시 전당대회에서 김상현 부총재와 노무현 의원이 절차를 문제 삼아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3당 합당과 “이의 있습니다”] 1990년 1월 22일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전격 회동을 갖고 3당 합당과 함께 민자당 창당을 선언하고 있다(위). 이어 1월 30일 합당 결의를 위해 서울 마포당사에서 열린 민주당 임시 전당대회에서 김상현 부총재와 노무현 의원이 절차를 문제 삼아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자당 탈당, JP의 신당 창당] 1995년 3월 30일 민자당을 탈당하여 신당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JP(가운데)가 창당대회에서 총재로 추대된 뒤 박준규 고문(왼쪽), 유수호 전당대회 의장과 함께 손을 들어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자당 탈당, JP의 신당 창당] 1995년 3월 30일 민자당을 탈당하여 신당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JP(가운데)가 창당대회에서 총재로 추대된 뒤 박준규 고문(왼쪽), 유수호 전당대회 의장과 함께 손을 들어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 1월 22일 신민주공화당을 이끌던 JP는 여당인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통일민주당 총재인 김영삼 총재와 3당 합당을 선언한다. 이렇게 민주자유당은 탄생했고, JP는 1992년 대선에서 YS를 지원해 대선 승리를 안기게 된다.

이에 1월 30일 합당 결의를 위해 서울 마포당사에서 열린 민주당 임시 전당대회에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상현 부총재와 절차를 문제 삼아 “이의 있습니다”라며 항의했던 모습도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됐다.

#2. DJ를 대통령으로

[DJP연합 결성] 김대중(왼쪽)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1997년 11월 3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양당 후보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DJP 연합이 공식 출범하고, 이인제 전 경기지사의 국민신당 창당으로 제 15대 대선구조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DJP연합 결성] 김대중(왼쪽)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1997년 11월 3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양당 후보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DJP 연합이 공식 출범하고, 이인제 전 경기지사의 국민신당 창당으로 제 15대 대선구조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DJP 후보 단일화 특종 보도한 한국일보] 1997년 10월 28일 JP와 DJ의 단일화 협상관련 회동과 11월 3일 힙의문 서명 예정을 특종보도한 한국일보 지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DJP 후보 단일화 특종 보도한 한국일보] 1997년 10월 28일 JP와 DJ의 단일화 협상관련 회동과 11월 3일 힙의문 서명 예정을 특종보도한 한국일보 지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조의 분열…말 없는 악수] 1999년 1월 19일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세종로청사에 도착해 영접 나온 김종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례독대를 갖고 내각제개헌 연기문제에 대한 입장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조의 분열…말 없는 악수] 1999년 1월 19일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세종로청사에 도착해 영접 나온 김종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례독대를 갖고 내각제개헌 연기문제에 대한 입장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대선에서 YS를 지원하며 DJ를 꺾는데 일조한 JP 그다음 대선에서는 DJ를 지원한다.

JP는 YS가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지 않자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다. 하지만 대권 도전이 여의치 않자 1997년 대선에서 DJ와 손잡아 대통령 당선을 돕는다.

JP는 DJ정부 초대 총리를 맡았으나 이 공조 역시 오래가지 않는다. DJ는 IMF 극복 등을 이유로 애초 합의한 1999년까지 내각제 개헌을 끝내 하지 않았고, 2001년 JP는 DJP 공조 파기를 선언한다.

#3. 정계은퇴

[민주당과 결별] 2000년 2월 24일 김종필(앞줄 왼쪽) 자민련 명예총재와 이한동 총재가 마포 당사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민주당과 결별] 2000년 2월 24일 김종필(앞줄 왼쪽) 자민련 명예총재와 이한동 총재가 마포 당사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민주당과 결별] 2000년 2월 24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마포 당사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민주당과 결별] 2000년 2월 24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마포 당사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정계은퇴 선언] 2004년 4월 19일 자민련 당사에서 김종필 총재가 당선자들과의 대화 도중 심각한 표정으로 정계은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계은퇴 선언] 2004년 4월 19일 자민련 당사에서 김종필 총재가 당선자들과의 대화 도중 심각한 표정으로 정계은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JP는 2004년 자민련 독자세력으로 17대 총선에 나선다. 하지만 당은 참패하고 10선 도전에 나선 그도 낙선하게 된다. 당시 자민련은 지역구 4석에 지지율 2.8%에 그쳐 비례 1번으로 출마한 JP마저 낙선한 것이다.

이에 JP는 4월 19일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제도권 정치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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