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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난민 신청인의 거짓말

입력
2018.06.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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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1년 차 첫해에, 나는 난민 사건을 여섯 건 맡았다. 여섯 명 모두 내게 거짓말을 했다. 어떤 거짓말은 사소한 것이었다. 험지를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다 말하지 않은 정도였다. 보통 그렇다. 대체로 거짓말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일들이다. 자존심을 지키려는 발버둥, 자신의 실수를 축소하려는 변명, 비합리적인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시도 정도다.

그러나 그중 결정적인 거짓말을 한 난민 신청인이 한 명 있었다. 나는 다섯 건에서 패소하고, 큰 거짓말을 들은 한 건은 소취하를 했다. 나는 물증이 있다는 그의 말을 믿고 영국, 호주, 나이지리아, 우간다의 기자며 활동가들에게 물어물어 연락을 한 끝에, 그 물증을 직접 확인하고 거짓말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내가 알아낸 것을 피고인 한국 정부가 못 알아내겠느냐, 무익한 소송을 그만두고 출국하라고 당사자를 설득했다. 그는 거짓말을 시인하거나 사과하지 않았고, 한국을 떠났다.

나는 한동안 그 여섯 번째 사건에서 사임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거짓을 밝힌 후 화를 내지 않았던 것도, 참과 거짓의 심판자 노릇을 하지 않고 매끄럽게 절차를 정리한 것도 내심 자랑스러웠다. 그럴듯한 ‘변호사’로 무사히 첫해를 넘긴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의 거짓말이 정말 그토록 결정적이었을까? 애당초 난민 신청인이 ‘결정적인’ 혹은 ‘중대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출신국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대낮에도 살인과 집단폭행이 빈번했고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다. 정부 정책과 법 집행은 특정 집단에 적대적이었고, 국민들의 흥분을 가라앉히기보다는 부추기고 이용했다. 시신이 길에 널렸고 사람들이 대낮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전 세계 뉴스에도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개인의 거짓말이 국가 단위로 확대될 수 없는 이상, 세상 모든 소식이 거짓이 아니라면 분쟁 지역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난민 신청인이 할 수 있는 거짓말의 최대치는 기껏해야 ‘내 출신국은 위험한 곳이지만 나는 당장은 그만큼 위험한 처지는 아니다.’ 정도다. ‘내 나라는 위험하지 않다’나 ‘나는 모국에서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지만 더 잘살아 보려고 브로커에게 전 재산을 써 가며 난민 인정률이 1%인 한국에 왔다’, ‘차별을 좀 당해도 한국에 살면 얻는 게 더 클 테니까 한 번 와 봤다’가 아니다. 국외 이주는 아주 평화로운 사회에서도 일생일대의 결정이다. 하물며 문화와 언어와 인종이 다른 나라로의 이주는 어지간한 사람이 어지간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난민 신청인들의 이주는 이주라기보다는 탈출이고, 선택이라기보다는 흐름이다.

한국같이 난민 인정이 까다로운 나라를 도착국으로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캐나다의 2017년 상반기 난민 인정률은 70%였다. 한국의 2016년 난민 인정률은 1.5%다. 난민 신청인들에게는 대개 도착국 선택권이 없다. 브로커가 그때그때 구해주는 교통편에 몸을 싣는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 오는 사람들도 생긴다. 한국행 표를 받은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운이 나쁜 편이 아닌가 싶다. 난민 인정률은 낮고 인종차별은 심하고 타문화에 대한 교육은 부족하고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교육이나 정책은 부족하다. 난민 인정을 받아도 살기 쉬운 나라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공백이고 빈틈이었다.

요즈음 이 공백에서 혐오가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다. 무지와 공포를 먹이 삼아 순식간에 세를 불려가는 혐오를 겁에 질려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생각한다. 어쩌면 그때 그 거짓말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중요한 거짓말을 할 수조차 없는 삶이 있다는 것을,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고.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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