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사이트 ‘금지어 지정’했지만
마침표 찍는 편법으로 표현 사용
캐나다 등 혐오표현 땐 형사처벌
인권위 “규제 가이드라인 연말 제시”
지금 한국어의 입말에서 가장 무서운 번식력을 자랑하는 접미사는 ‘-충(蟲ㆍ벌레)’이다. 각종 ‘○충’, ‘○○충’과 같은 새 비하 표현의 목록이 끝도 없이 늘어나는 탓이다. 특정 성별, 연령대, 직업군, 행동특성 등 그 무엇에 갖다 대도 ‘말이 되는 듯’한 ‘-충(蟲ㆍ벌레)’의 조어력이 새삼 놀라울 정도다.
2000년대 초반 게임 채팅창, 온라인 게시판 등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무뇌충’ 등 일부 표현은 한때의 등장, 한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았다. 각종 유사 표현이 꾸준히 등장했고, 이들 단어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어른들의 입에서 아이들의 입으로 번졌다.
노인 일반, 유자녀 여성 일반, 아동 및 청소년 일반 등 주로 약자를 비하하는 각종 ‘○충’, ‘○○충’이 일상 대화에서 스스럼없이 등장했고, 2015년에는 ‘○○충’이 불쾌한 신조어 1위에 등극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성인 남녀 1,4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가장 듣기 불편한 신조어’로 ‘충을 붙인 각종 혐오 단어’를 꼽았다. ‘진지충’, ‘설명충’ 등이 그 예시다. 2위와 3위에 오른 특정 지역 비하 신조어, 여성 혐오 단어 등을 모두 제쳤다.
이를 포함한 온라인 혐오표현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혐오표현 실태와 규제방안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1,014건의 온라인 조사 및 대면조사에서 “온라인 혐오표현으로 스트레스,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이주민 42.6%, 성소수자 43.3%, 기타여성 51%에 달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일부 사이트 게시판에서는 ‘○충’ 등 표현의 입력을 원천 차단했지만 주요 포털 게시판 및 댓글창에서는 아직 입력이 가능한 상태다. 이고은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금지어로 지정을 하더라도 중간에 마침표를 찍는 편법 등으로 해당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미 ○충(모성 혐오 표현)이란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사이트와 서비스를 보면 적어도 ‘이건 나쁜 행동’, ‘인권 침해적 행위’라는 경종을 울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의 혐오표현 실태 연구 책임자이자, 후속 규제방안 연구를 진행 중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해당 표현들이 수행하는 말과 위축의 효과가 상당한 수준인 건 사실”이라면서도 “단지 하나의 표현을 쓰지 못하게 제한하는 문제로 접근하기엔 보다 깊은 차별의 문화와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각 표현이 점점 심각한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고, 실제 차별이나 폭력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어 규제의 방법을 고민하되 전반적인 차별의 금지와 시정 차원에서 규제책들이 적절히 배치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 관계자는 “각종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의 가이드라인을 올 연말까지 제시할 계획”이라며 ”형사처벌, 민사ㆍ행정적 규제, 교육현장의 변화 등 다양한 차원의 내용이 검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의 경우 유럽연합 내 20여개 국가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브라질, 콜롬비아 등에서 혐오 표현과 증오 선동을 형사처벌한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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