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쭝투, 추수 감사보다 어린이 위한 행사가 한가득

입력
2018.09.26 18:00
수정
2018.09.26 19: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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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추석 '쭝투'를 나흘 앞둔 지난 20일 저녁 '사이공 등 거리'로 불리는 호찌민시 5군의 누엉 누 혹 거리 풍경. 딸을 안고 외출에 나선 한 남성이 딸에게 줄 등을 고르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베트남 추석 '쭝투'를 나흘 앞둔 지난 20일 저녁 '사이공 등 거리'로 불리는 호찌민시 5군의 누엉 누 혹 거리 풍경. 딸을 안고 외출에 나선 한 남성이 딸에게 줄 등을 고르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동남아에서 한국의 추석이나 서양의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을 갖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열대 지역 특성상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하고 연중 신선한 과일이 나는 탓에 ‘수확의 계절’이란 개념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남아에서도 유교문화권인 베트남에는 추석이 있다. 우리 추석명절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중추(仲秋)의 한자 발음을 그대로 가져와 음력 8월 15일을 쭝투(Trung Thu)로 부르며, 조상들과 각종 신에게 제를 올리기도 한다.

 ◇수확 아닌, 물주기 ‘추석’ 

한국에서 추석은 며칠 동안의 연휴가 보장되는 대표적인 명절이지만, 베트남의 쭝투는 평일이다. 계절 구분이 있는 북쪽 지역에서는 거둔 곡물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조상이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베트남 전국적으로 보면 꼭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기어렵다. 오히려 쭝투는 어린이들을 위한 날에 가깝다.

중국, 프랑스, 미국 등 강대국과의 싸움을 하면서 전쟁이 곧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베트남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어린이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날만큼은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자고 한 호찌민 전 주석의 영향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날로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베트남 사회학 박사인 이계선 하노이 탄롱대 교수는 “전쟁으로, 바쁜 농사일로 평소 아이들을 잘 챙기지 못한 어른들이 미안함을 표시하는 날이기도 하다”며 “베트남의 추석은 1년 농사가 끝난 수확보다는 베트남 미래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전쟁과 바쁜 농사 탓에 뒤로 제쳐놓았던 어린 새싹들을 다시 살펴보고 물을 주는 날이라는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각급 기관, 아파트, 마을 등 각종 단체는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이 성대하게 펼친다. 다만 올해는 지난 21일 서거한 쩐 다이 꽝 국가주석 장례식이 7일 국장으로 진행되는 만큼 일체의 공연과 유흥행사가 금지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는 선물은 허용하되, 노래와 무용 등 공연은 금지했다.

지난 24일 호찌민시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서 금색 옷을 입은 지신(地神) '옹디아'와 용의 탈을 쓴 공연팀이 '떼티엔' 북소리에 맞춰 복을 부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구경에 나서기는 했지만 며칠전 서거한 쩐 다이 꽝 국가주석 국장 때문인지 조용한 분위기였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지난 24일 호찌민시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서 금색 옷을 입은 지신(地神) '옹디아'와 용의 탈을 쓴 공연팀이 '떼티엔' 북소리에 맞춰 복을 부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구경에 나서기는 했지만 며칠전 서거한 쩐 다이 꽝 국가주석 국장 때문인지 조용한 분위기였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경제성장과 함께 상업화 바람도 

어린이들은 주로 이날을 앞두고 별 모양의 등과 용 모양 탈을 받는다. 등을 든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행운을 빌고 사탕이나 복채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풍속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3세와 7세 두 자녀를 두고 있는 호찌민 시민 팜 민 용(34)씨는 “예전처럼 밖에서 뛰놀기는 어려워도 아이들은 집에서 불을 밝히고, 탈을 쓰고도 충분히 즐거워했지만 최근 휴대폰이 생긴 뒤로는 이것도 옛날 이야기가 됐다”며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물품을 선물하지 않으면 시시해한다”고 말했다. 등의 가격은 한 끼 식비에 해당하는 5만동(약 2,400원) 수준이다.

쭝투가 다가온다는 사실은 길거리에서 먼저 감지된다. 한 달 전부터 ‘반쭝투’로 불리는 월병을 파는 가판대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제과점과 빵집들은 반쭝투 선물세트를 매대 전면에 배치한다. 쭝투를 맞아 친ㆍ인척, 친구, 이웃, 거래처 등 주변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반쭝투를 찾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다.

어른 주먹만한(180g) 반쭝투의 경우 보통 개당 6만~9만동(약 2,900~4,300원), 화려한 상자에 포장된 4개들이의 경우 25만~50만동이 일반적이다. 속에 팥, 견과 대신 생선, 제비집, 인삼 등이 들어간 반쭝투는 상자당 200만동을 훌쩍 넘기도 한다. 최근에는 5성급 호텔들도 경쟁적으로 고급 반쭝투 판매에 나서는 등 고급화 전략을 펴고 있다. 올해에는 350만동짜리 반쭝투도 등장했다. 근교 지역 임금 기준으로 초년 직장인들의 한 달 월급과 맞먹는 가격이다.

무역업을 하고 있는 현지 사업가(37)는 “거래처를 관리하는 데 있어 쭝투만큼 좋은 때가 없다. 비싼 반쭝투를 받으면 그만큼 선물을 준 상대가 나를 생각한다고 여긴다”며 “성의 표시가 필요할 땐 여기에 돈봉투를 추가로 넣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저녁 '사이공 등 거리'로 불리는 호찌민시 5군의 누엉 누 혹 거리의 상점에서 한 여성 고객이 형형색색의 등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지난 20일 저녁 '사이공 등 거리'로 불리는 호찌민시 5군의 누엉 누 혹 거리의 상점에서 한 여성 고객이 형형색색의 등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사라질 위기의 전통 

하지만 최근 일각에서는 이런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거부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저렴한 반쭝투를 서로 부담 없이 주고받고, 그래서 감사의 뜻을 전하는데 쓰이는 본래의 취지를 되살리자는 것이다. 개당 2,000~5,000동(약 100~250원)의 미니 반쭝투를 판매하는 곳도 생기고 있다. 판매상 호앙 반 부씨는 “일반 소비자는 물론 기업 고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고 현지 매체 반 호아에 말했다.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베트남 추석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은 반쭝투의 본래 의미만은 아니다. 추석을 곳곳에서 수놓던 등을 파는 상가들도 위기에 처했다. 등이 화려하고 다양한 시각물에 노출된 아이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등은 어른들의 사진 촬영 배경으로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사이공의 등의 거리’로 불리는 호찌민시 누엉 누 혹 거리에서 등을 팔고 있는 안씨는 “10분 동안 등을 구경하면서 사진만 찍다 가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이 같은 전통이 존속되기를 바란다면 사진만 찍을 게 아니라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쭝투 전까지 팔지 못한 등들은 폐기되거나 다른 장식 용도로 헐값에 팔려나간다. 등 판매상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가격을 해마다 올리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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