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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반려견을 데리고 유학 간 스님

입력
2018.10.17 18: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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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골품제가 지배하는 귀족사회다. 귀족사회는 능력보다 세력에 의해 관직이 부여된다.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서의 위치가 가장 중요함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 당나라의 유학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귀족이라도 출가한 승려는 입장이 다르다. 출가인은 집안에서의 위치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또 강렬한 종교적 열망은 때론 죽음을 무릅쓴 갈망이 되기에 충분하다.

당나라 유학승 중 유명한 분을 꼽자면, 단연 자장과 의상이 아닐까? 그러나 이는 한국불교 안에서의 이야기고, 중국불교에서 보면 가장 유명한 분은 김지장(金地藏 혹 교각ㆍ696∼794)이다.

김지장은 신라의 왕자 출신으로 719년 안휘성 구화산으로 들어가 혹독한 수행에 매진한다. 이후 99세에 입적하는데, 육신이 부패하지 않고 유연한 상태가 유지되므로 이를 그대로 예배 존상으로 모시게 된다. 이곳은 김지장의 육신을 모신 곳이라 해서, 육신보전(肉身寶殿)이라는 명칭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중국인들은 김지장을 지옥의 구제자인 지장보살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한다. 해서 구화산은 중국불교에서는 지장보살의 성산(聖山)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구화산지’에는 김지장이 신라에서 ‘차를 가지고 갔다’는 것과 ‘반려견을 대동했다’는 내용이 있어 흥미롭다. 오늘날까지 구화산에는 차가 유명한데, 이 차의 시작이 김지장이 전래한 신라 차인 것이다. 그래서 차 이름 또한 김지차(金地茶), 즉 김지장의 차로 불린다. 차하면 으레 중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런 역수출의 코드도 존재하는 것이다.

차를 가지고 간 것은 물을 갈아 먹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이야 생수나 정수기가 있어 별일 없지만, 1∼2세대 전만 하더라도 물을 바꿔 먹으면 배탈로 고생하기 일쑤였다. 때문에 집집마다 정로환을 구비하곤 했더랬다.

잘 모르는 분들은 정로환을 오래된 약으로 알지만, 실은 일본에서 최근에 만들어진 신약이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감행하려 할 때, 식수에 의한 배탈은 전투력에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연구된 결실이 바로 정로환이다. 해서 이름 또한 러시아, 즉 ‘로서아(露西亞)를 정벌(征伐)하기 위해 만든 약’이라는 의미의 정로환(征露丸)인 것이다. 차에는 물을 중화시키는 기능이 있으니, 김지장에게 있어 신라 차는 고대의 정로환이었던 셈이다.

구화산의 김지장상과 그림에는 오늘날까지 빠짐없이 개가 등장한다. 이야기인즉슨 김지장이 유학할 때 흰색 개인 선청(善聽)을 데리고 해로로 갔다는 것이다. 만일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는 반려견을 데리고 유학을 떠난 최초의 사례인 셈이다. 현재 선청과 관련해서, 경북 경산에서는 이를 삽살개라 하고 경주에서는 사냥개인 동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청의 유명세가 지역감정까지 촉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이 내용을 봤을 때, ‘설마 개를 데려갔을까?’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요즘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선청이라는 이름이 ‘말을 잘 듣는’이라는 뜻이니,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붓다는 승려의 생활을 규정하는 율장에서, 승려는 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고 정해 놓았다. 그것은 애착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자식이나 가족이라 칭하는 분들을 보면, 붓다의 경계는 분명 타당하다. 그러나 산중에서 홀로 수행하는 수행승의 입장이라면, 반려동물의 필연성 역시 또 다른 타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즉 붓다도 옳고 김지장도 맞다는 말이다.

‘반드시 어때야만 한다’라는 규정보다는 상황 변화에 따른 합리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마치 어제의 가축이 오늘은 가족이 된 것처럼 말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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