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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끄지 사건 지렛대로 실리 챙기는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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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끄지 사건 지렛대로 실리 챙기는 터키

입력
2018.10.18 17:56
수정
2018.10.18 18:5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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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오른쪽) 대통령이 터키 앙카라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앙카라=EPA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오른쪽) 대통령이 터키 앙카라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앙카라=EPA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의혹 사건은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사우디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반면 사우디와 중동 질서에서 미묘한 경쟁 관계에 서 있던 터키 정부가 최대 숨은 수혜자가 됐다. 지속적인 ‘수사 내용 유출’로 이번 사건을 물밑에서 봉합하려는 사우디와 미국을 압박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 내려는 지렛대로 적극 이용하고 있다.

17일 터키 일간지 ‘예니사팍’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카슈끄지가 고문당하는 순간을 녹음한 음성 녹취록으로 알려진 내용을 유출 보도했다. 이 ‘녹취록’ 에는 카슈끄지가 고문 당할 때 살아 있었다는 내용과 모하메드 오타이비 총영사가 현장을 보고 있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오타이비 총영사가 “밖에서 하라. 내가 곤란해진다”고 말하자 ‘범인’ 중 한 명이 “본국에 살아서 돌아가려면 조용히 해”라고 협박하는 내용도 공개됐다.

서방 언론은 ‘녹취록’ 유출 시점이 절묘하다고 지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확실하지도 않은데 죄인 취급 받고 있다”고 사우디를 옹호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해 ‘미래권력’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 우호적인 회담을 마친 후 터키 앙카라로 향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려는 시점에 보도가 터졌기 때문이다.

녹취록을 보도한 예니사팍은 친(親)에르도안, 친정의개발당(AKP) 성향 매체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 유출이 터키 관료와 조율됐을 가능성이 높다. 터키 의원 출신인 수앗 크느클르오을루 영국 옥스퍼드대 방문연구원은 캐나다 언론 글로브앤드메일에 “터키가 사우디, 미국과 협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지 못했다고 생각해 추가 유출을 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미국ㆍ사우디에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미디어 전쟁’의 승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터키 당국은 카슈끄지 암살 의혹이 불거진 이래 이번 사건을 지속적으로 언론에 노출하며 국제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첫 보도는 카슈끄지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에서 나왔지만 이후 대부분 폭로는 터키 언론이 선봉에 섰다. 터키 친정부 매체인 데일리사바는 카슈끄지 살인 용의자로 지목한 ‘사우디 15인’의 신상을 공개했다. 관영방송 TRT월드도 이들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세계로 송출했다.

사우디 언론은 터키 경찰의 조사 내용 유출이 ‘역정보’라고 맞섰지만, 국제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나마 사우디 언론의 작품은 위성방송 알아라비야가 카슈끄지의 아들 살라 카슈끄지를 만나 “약혼녀를 알지 못한다” “사우디 정부와 협조하겠다”는 응답을 얻어낸 정도다.

결국 궁지에 몰린 사우디가 조사에 협조하겠다며 터키 수도 앙카라에 대표단을 파견했지만, 전문가들은 양국 이해를 조정하기 위한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관측했다. 터키 역시 사우디와 충돌하기보다는 이번 사건을 고리로 이익을 최대한 얻어낼 것으로 보인다. 그간 양국이 몇몇 긴장에도 불구하고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고, 사우디 자본의 상당수가 터키에 들어가 있는 이상 정면충돌은 오히려 파국을 부를 수도 있다.

미국 카토연구소의 이슬람 전문가 무스타파 아크욜은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에 “터키가 사우디 전체를 적으로 돌리기보다 왕가 내의 특정 세력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라며 “내심으로는 살만 사우디 국왕이 아닌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를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한 듯하다”고 말했다. 모하메드 왕세자는 대(對)이란 강경 노선을 주도하고 걸프 국가들을 이끌어 이란과의 중립 외교를 추구한 카타르를 고립시켰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카타르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충돌한 바 있다.

‘비전 2030’을 발표, 사우디의 미래 개혁가를 자처하며 서방 언론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모하메드 왕세자는 카슈끄지 살인 의혹으로 위상이 심각하게 실추됐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억류 미국인 앤드루 브런슨 목사를 석방한 대가로 폼페이오 장관을 앙카라로 불러들여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예고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급락했던 터키 리라화는 카슈끄지 사태 이후 오히려 강세로 반전했다. 한 언론인의 실종이 중동 질서를 움직이는 두 권력자 입지를 순식간에 바꿔 놓은 셈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모하메드 빈 살만(오른쪽) 왕세자의 미국 여행 중 수행원으로 동행한 마헤르 압둘라지즈 무트레브(뒷줄 왼쪽 2번째)는 터키 언론이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용의자로 지목한 15인 중 한 명이다. 휴스턴=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모하메드 빈 살만(오른쪽) 왕세자의 미국 여행 중 수행원으로 동행한 마헤르 압둘라지즈 무트레브(뒷줄 왼쪽 2번째)는 터키 언론이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용의자로 지목한 15인 중 한 명이다. 휴스턴=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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