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자동차 제조사가 일정 대수의 친환경 차를 의무적으로 팔도록 하는 ‘친환경차 의무 판매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체들은 “위기에 처한 자동차 산업을 낭떠러지로 미는 꼴”이라며 한목소리로 반대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회사마다 조금씩 입장이 다르다.
15일 환경부와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국내 5개 완성차 업체와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들은 14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초청 자동차산업발전위원회에 참석해 “이미 국내 차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배기가스 규제가 적용되는 데 여기에 친환경 차 의무판매제까지 더해지면, 가뜩이나 어려운 자동차 산업에 큰 충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에서 8일 공개한 미세먼지 관리강화 대책에 포함된 친환경차 의무판매제 도입을 유예해달라는 요구다.
역시 내년에 친환경차 의무판매제를 시행하려는 중국처럼 그 비율을 10% 이상으로 맞추면, 국내 5개사는 현재의 약 2배인 총 18만대(지난해 내수시장 승용차 판매 대수 기준) 넘게 친환경차를 팔아야 한다.
제도를 설계 중인 환경부는 △친환경차 조건 △판매 비율 △시행시기 △부담금 규모 등 기본 틀을 마련해 내년 2월에 구체적 방안을 공개할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경유차를 줄이기 위한 한 대책으로 검토 중”이라며 “업계와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제도를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조사 중 가장 많은 8종의 친환경차 모델을 보유한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다. 현대차는 보조금 규모만 맞춰준다면 제도를 따르는 데 별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에도 아이오닉 전기차, 쏘나타 하이브리드 등 8,046대를 내수시장에서 판매했다. 특히 수소전기차 넥쏘를, 이 기회를 통해 대중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기아차도 니로 하이브리드ㆍ전기차, K5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 5종의 모델을 갖추고 있어 현대차와 비슷한 상황이다.
외국계 모기업을 둔 르노삼성차와 한국GM은 부족하지만 현재도 볼트, SM3 등 친환경차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데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차로 새로운 라인업을 구성할 수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볼트의 수입대수를 늘리고, 하이브리드차도 생산할 계획이어서 친환경차는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쌍용차다. 전 차종을 스포츠유틸리티(SUV)로 구성한 업체로 대부분 모델이 경유차다. 가솔린차도 티볼리 모델 1개뿐이다. 코란도C 후속으로 모델로 전기차를 준비하고 있지만, 2020년이나 돼야 출시할 수 있다. 쌍용차 관계자는 “부품 협력사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며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하며, 5년 이상의 준비할 기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가 시행되면 자동차 시장에 큰 변화가 올 수 있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인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환경개선을 목적으로 다수의 규제를 복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며 “기존 제도를 활용해도 환경을 고려한 친환경차 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배기가스규제 △기업 평균 온실가스 규제 △공공부문 친환경자동차 의무 구매제도 등 친환경을 목적으로 자동차에 부과되는 규제를 시행하거나 준비 중인 상황에 새로운 규제를 더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앞으로도 기술 투자가 더 필요한 내연기관차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할 수 있고, 큰 업체만 점유율을 더 늘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며 “친환경차를 팔면 혜택을 주는 식의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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