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역 폭행’ 사건 이후 극심한 젠더 갈등과 논란을 부추긴 성(性)혐오 공방은 양측의 최초 진술서에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까지 정도가 심한 취중 쌍방폭행으로 보이는 사건의 사실관계가 제대로 드러나기도 전에 34만명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하는 등 불필요한 성 대결 양상으로 비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은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말다툼하던 남성 일행의 손을 치면서 촉발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주요 폭행 현장인 주점 밖 계단 상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동작경찰서는 16일 “주점 내 폐쇄회로(CC)TV 영상과 업주 진술을 토대로 경위를 파악한 결과,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시비를 걸면서 시작됐고 첫 신체접촉은 여성 한 명이 남성의 손을 친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 직후 몸싸움을 벌인 A(21)씨 등 남성 3명과 B(23)씨 등 여성 2명은 쌍방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로, 경찰은 이를 둘러싼 억측과 논란이 확산되자 이례적으로 이날 설명회까지 자처했다.
경찰에 따르면 13일 오전 4시쯤 B씨 일행은 소란을 피운다는 이유로 옆 테이블 남녀 커플과 1차 언쟁을 벌였다. 이들이 자리를 뜨자 이번에는 남성 일행과 시비가 붙었다. 여성 측이 상대 남성의 손을 치면서 시작된 시비는 서로의 모자 챙을 치고, 몸을 밀치는 싸움으로 번졌다. 휴대폰으로 상대를 촬영하고 여성이 남성의 멱살을 잡기까지 했다. 이후 남성들이 주점을 나가려 하자, 여성들이 쫓아나가 주점 밖 계단에서 다시 충돌해 여성 한 명이 크게 다쳤다는 게 경찰이 현재까지 파악한 내용이다.
그러나 주점 밖 계단에는 CCTV가 없어 누구의 과실로 여성이 ‘뼈가 보일 만큼’의 부상을 입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남자 중 한 명이 발로 차 계단 모서리에 뒤통수를 박은 것’(여성 측)이라는 주장과 ‘나가려는 자신들을 제지하다 계단에서 혼자 뒤로 넘어졌다’(남성 측)는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젠더 대결의 도화선이 된 ‘남혐 여혐 발언’이 실제 있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여성들이 머리가 짧아서 때렸다’ 같은 내용은 업주 진술과 최초 출동한 지구대에서 양측이 쓴 자필 진술서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상황이라 주장하며 온라인에 공개된 동영상에는 양측이 서로의 성(性)을 조롱하며 남혐ㆍ여혐 발언을 쏟아내는 장면이 담겼다. 경찰은 조만간 당사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사실관계를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피의자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의문은 이들의 형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양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의 정도지만, 범죄를 유발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종합적으로 본다”며 “어느 한 쪽의 피해가 중하다고 해도, 멀쩡히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당한 것인지, 같이 말싸움 중에 다친 것인지에 따라 양형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박기태 변호사는 “다치게 된 경위도 좀 더 세밀하게 고려돼야 한다”며 “때려서 뼈가 보일 정도로 다친 것인지, 살짝 밀었는데 운이 나쁘게 모서리에 부딪혀 그렇게 된 것인지 가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여성 중 한 명이 온라인 공간에 '뼈가 보일 만큼 폭행당해 입원 중이나 피의자 신분이 되었습니다'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 14일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여성은 해당 글에서 ‘남성이 밀쳐 계단에 머리를 찧으면서 (한 명은) 뼈가 거의 보일 정도로 뒤통수가 깊이 패였다. (남성들이) 말로만 듣던 메갈 실제로 처음 본다, 얼굴 왜 그러냐 등 인신공격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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