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α 민간투자 유도해 내수 진작
최저임금, 52시간제는 속도 조절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J노믹스)이 시장과 기업 쪽으로 우(右)클릭하고 있다.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일자리와 소득주도성장’에 방점을 찍었던 정부가 내년 경제정책방향에선 최우선 과제로 ‘전방위적 경제활력 제고’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기업 투자를 가로 막고 있는 규제들을 풀고 애로 사항들을 해소함으로써 민간 투자를 늘리고 내수를 살리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시장에 충격을 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 등도 속도가 조절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골자로 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바뀌어도 포용의 가치는 바꿀 수 없는 핵심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같은 새로운 경제 정책은 경제ㆍ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필요한 경우 보완조치도 함께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구제적으로 나온 정책도 주로 기업 투자를 늘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장 먼저 민간ㆍ공공ㆍ지자체에 막혀 있는 대규모 투자의 물꼬를 터 투자 분위기를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그 동안 소득주도성장과 사람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주창해 온 정부가 ‘기업과 시장’ 중심으로 궤도를 수정하는 것 아니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는데다 대내외 여건도 급속하게 악화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조선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 반면 신성장 동력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주요국 성장 둔화와 미중 통상마찰로 그 동안 버팀목이 돼온 수출도 내년엔 장담하긴 힘들다. 정부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6~2.7%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지난 7월 전망치(2018년 2.9%, 2019년 2.8%)보다 크게 후퇴한 수치다. 월 평균 취업자수 증가폭도 30만명을 훌쩍 넘긴 예년에 비해 대폭 쪼그라든 올해 10만명, 내년 15만명을 제시했다.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2.8%)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재정ㆍ금융ㆍ제도 개선 등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기업 등 민간의 경제 활력을 제고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우선 ‘투자 대기’ 상태인 6조원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4개)가 내년 상반기 중 조기 착공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그룹이 옛 한국전력 부지(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짓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설 프로젝트(3조7,000억원)가 대표적인 예다. 또 민간투자사업제도를 개편해 민간투자 6조4,000억원도 이끌어 내기로 했다. 이 경우 총 ‘12조원+α’의 민간투자가 이뤄지게 된다. 정부는 또 예비타당성조사 실시 사업비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각 지자체들이 신청한 총 60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중 경제적 효과가 큰 사업에 대해선 아예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 주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4대 주력 산업에 수조원대 세금이 투입되는 기업 지원 강화책도 담았다.
정부는 또 소비 진작을 위해 연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5%→3.5%)를 6개월 연장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시내 면세점 추가 설치 △지자체 기부금에 대해 세 혜택을 부여하는 고향세 도입 △온누리상품권 발행규모 확대(2조원)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평가는 엇갈렸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그간 노동공급을 강화해 온 정부가 여의치 않으니 수요 진작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굉장히 고무적”이라며 “사람 중심도 고용해주는 기업이 있어야 하니 기업의 애로를 풀어주면서 노동수요를 끌어올리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투자 없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투자 활성화 대책이 담긴 것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 시절처럼 기업에 매달리는 정책으로 회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가 이야기하는 활력은 재벌 대기업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지금 문제는 중소ㆍ중견기업의 경쟁력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인데 이에 대한 대책은 안 보인다”고 꼬집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n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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